항목 ID | GC081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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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湖書堂 |
영어공식명칭 | Namho Village School |
이칭/별칭 | 남호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남하리 53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786년 - 남호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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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98년 - 남호사에서 남호서원으로 승격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남호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 남호서당 복원 |
현 소재지 | 남호서당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남하리 535-1] |
원소재지 | 남호사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성격 | 서당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금포당]|홑처마 맞배지붕[충렬사] |
정면 칸수 | 4칸[금포당]|3칸[충렬사] |
측면 칸수 | 2칸[금포당]|1칸[충렬사] |
소유자 | 청도 김씨 김시성 후손 문중 |
관리자 | 청도 김씨 김시성 후손 문중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 있는 서당.
[개설]
남호서당(南湖書堂)은 조선 후기 무신 김시성(金是聲)[1602~1676]을 추모하기 위해 1786년(정조 10)에 남호사(南湖祠)로 건립되었다. 김시성의 본관은 청도(淸道)이고, 자는 문원(聞遠), 호는 금포(錦浦)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사행(金四行)이고, 어머니는 인동부사 신해(申海)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익찬으로 임명되었다. 익찬 재임 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온 공로로 1646년(인조 24)에 황주판관에 제수되었다. 이후 용천부사·강계부사·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행적을 엮은 『금포실기(錦浦實紀)』가 전한다.
[위치]
청천초등학교 정문에서 북쪽으로 천변의 남하길을 따라 350m 가량 이동한 후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 길로 250m 가량 이동하면, 남하새마을길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180m 떨어진 마을 끝자락에 남호서당이 위치해 있다. 남하1리는 16세기 전반 김시성의 청도 김씨 가문이 세거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북쪽에는 초례봉(醮禮山)[648m]이 있으며, 남쪽으로 1.2㎞ 떨어진 지점에 금호강(琴湖江)이 흐른다.
[변천]
남호서당은 1786년(정조 10)에 김시성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남호사(南湖祠)에서 유래한다. 1798년(정조 22)에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8년에 후손들이 남호서당으로 새롭게 복원하였다.
[형태]
남호서당은 강당인 금포당(錦浦堂)과 사당인 충렬사(忠烈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2칸 규모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구조이다.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다. 가구는 종량 위에 원형반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한 5량가 형식이다.
강당 뒤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되어 있다. 전면의 문비(門扉)는 중앙의 어칸에는 2짝의 골판문이, 좌우 협칸에는 1짝의 골판문이 달려 있다.
[현황]
남호서당은 청도 김씨 김시성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3월 3일에 향사를 지낸다. 내부에는 편액과 시판을 비롯하여 1846년에 이휘재(李彙載)가 쓴 「금포당기(錦浦堂記)」, 1986년에 정희영(鄭喜永)이 쓴 「충렬사세병관게액기(忠烈祠洗兵館揭額記)」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남호서당은 조선 후기 하양 출신의 무신 김시성을 제향하는 곳으로, 처음 사당에서 출발하여 서원으로의 승격 및 철폐, 서당으로의 복설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