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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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川里 |
영어음역 | Seong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선정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고려 중기 정안(鄭晏)이 쌓았다는 정안봉 산성 남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남성(南城)·성내·성천(城川)이라 하였다. 마을 주변에 있는 여섯 개 고개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재내라 하였다가 잔내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재내의 ‘재’가 보통 성(城) 또는 고개[峴]를 의미하기에 정안성 또는 여섯 고개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전해 오는 듯하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잔내라는 한글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성천촌(成川村)으로 기록되어 한자 표기가 다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성천동과 지소동(紙所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북쪽 정안봉(鄭晏峰)[448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높이 200~400m의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연이어 있고, 동쪽으로는 높이 100~200m의 비교적 낮은 산지가 다른 마을과 경계를 이룬다. 동쪽과 서쪽 산지 사이를 남쪽으로 흐르는 성천천(城川川)을 따라 좌우로 길게 펼쳐진 평야 지대에 마을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현황]
성천리는 고전면 중앙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3월 31일 현재 면적은 8.18㎢이며 총 155가구에 339명[남자 159명, 여자 1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소·남성·상성(上城)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지소는 예부터 종이를 생산했던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는 3·1 운동 때 마을 주민 1,000여 명이 봉기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자 세운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1983년 건립]와 삼미정(三美亭)[1997년 건립]이 있다. 성천리의 가장 위쪽 마을인 상성마을은 정안봉 바로 아래 있는 청정 지역으로 밤·감 등을 주로 재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