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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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民瞻神道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Gang Mincheom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동욱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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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10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1001 |
성격 | 비|신도비 |
관련 인물 | 강민첨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55㎝[높이]|75㎝[너비] |
소유자 | 진주 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
관리자 | 진주 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고려 전기 장군 강민첨의 신도비.
[개설]
강민첨(姜民瞻)[?~1021]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진주 강씨 은열공파 1대조인 강민첨은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과 함께 출전하여 적군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1019년 응양상장군 주국 우산기상시(鷹揚上將軍柱國右散騎常侍)에 올라,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었다.
이듬해 지중추사(知中樞事)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랐으며, 식읍(食邑) 300호를 하사 받았다. 1021년(현종 12) 11월 12일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은열공의 영정을 공신각에 올려 후세인들이 본받게 했으며, 조선 태종도 위대한 공적을 다시 거론하고 우방산과 두방산의 땅 약 300정보를 내렸다.
[건립 경위]
강민첨의 후손들은 강민첨의 영정을 두방영당에 모시고, 지금도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1910년 지역 유림들은 은열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두방영당 입구에 강민첨 신도비를 세웠다.
[형태]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로 된 보호각을 마련하고 사면은 홍살로 막았다. 강민첨 신도비의 높이는 255㎝, 너비는 75㎝이다.
[금석문]
신도비는 1910년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찬하였고, 비문은 제학(提學) 이승우(李勝宇)가 썼다. 전(篆)은 조종필(趙踵弼)이 썼다. 비문이 앞면부터 시작해 별도의 제목은 없고 두전은 ‘고려 병부상서 태자태부 은열공 강민첨 신도비’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