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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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玉山書院 |
영어의미역 | Oksanseowon Confus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 17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하동 옥산서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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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옥산서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1715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5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30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68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 176 |
성격 | 서원 |
정면 칸수 | 강당 5칸|문충사 3칸|영당 1칸|부리재 3칸|장판각 2칸|정문 3칸 |
소유자 | 영일 정씨 문중 |
관리자 | 정찬교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변천]
하동군 옥종면은 본래 진주 땅이었으나 1906년 하동에 소속되었다.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은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세거지로, 1715년(숙종 41) 시조(始祖)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정몽주의 손자이자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의 무죄를 주장하다 죽은 설곡(雪谷) 정보(鄭保), 증손자인 도암(道菴) 정지충(鄭智忠), 5세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증숭록대부 우의정 임헌공(林軒公) 정세필(鄭世弼), 8세손 학포(鶴圃) 정훤(鄭暄) 등 이름난 선조 6명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世德祠)를 지었다.
그 후 1830년(순조 30) 예조에서 세덕사를 서원으로 승격시켜 옥산서원이라 이름하고 정몽주의 위패만 봉안하였으며, 10년이 지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다. 종래의 세덕사는 진양군 대평면에 있는 정훤의 은거지 고산정(孤山亭)으로 옮겼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의 건립은 1374년(공민왕 23)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영남안렴사(嶺南按廉使)로 진주에 와서 비봉루(飛鳳樓)에서 하루를 묵은 인연으로부터 비롯된다. 정몽주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상남도의 유림과 후손들이 예조(禮曹)에 주청하여 옥산서원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며, 그 자리에 영당(影堂)을 지어 정몽주의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석채례(釋菜禮)를 올렸다. 지역 유림과 영일 정씨 후손들이 힘을 모아 1965년 서원을 복원하고 사당을 신축하여 문충사(文忠祠)라 이름 짓고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형태]
강당(講堂) 5칸, 사우(祠宇)인 문충사 3칸, 영당(影堂) 1칸, 동재(東齋)인 부리재(富理齋) 3칸, 장판각(藏板閣) 2칸, 정문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충사 서쪽 옆으로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장판각은 본래 서재(西齋)이던 건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인 장판각과는 달리 마루에 올라 방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옥산서원은 영일 정씨 문중 소유로 정찬교가 관리하고 있다. 정몽주의 기일(忌日)인 음력 4월 4일에 유림이 모여 향사를 지낸다.
장판각에 『포은집(圃隱集)』 옥산본(玉山本) 판본과 『설곡실기(雪谷實紀)』 등 500여 판이 보관되어 있다. 『포은집』 책판은 1890년(고종 27)부터 1902년(고종 39)까지 제작된 480판이며, 『설곡실기』는 1895년(고종 32)부터 1902년까지 제작된 95판이다. 위의 목판들은 모두 후손들이 비용을 들여 옥산재(玉山齋)에서 판각한 것이다. 목판과 포은 영정, 현판 2점, 대고(大鼓) 1점 등이 있으며,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