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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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鄕校 |
영어음역 | Hadonghyanggy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8월 12일 - 하동향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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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향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1415년 |
이전 시기/일시 | 1665년 |
이전 시기/일시 | 1730년 |
이전 시기/일시 | 1736년 |
이전 시기/일시 | 1744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3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3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47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원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
성격 | 향교 |
양식 | 맞배지붕|민도리|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3칸[동무]|3칸[서무]|5칸[내삼문]|5칸[명륜당]|4칸[동재]|3칸[서재]|3칸[풍화루] |
측면 칸수 | 4칸[대성전]|1칸[동무]|1칸[서무]|2칸[내삼문]|2칸[명륜당]|2칸[풍화루]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 기관.
[변천]
1415년(태종 15) 현감 최승선이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문묘와 하동향교(河東鄕校)를 창건하고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에 왜적이 침입하여 문묘와 향교, 문적, 기물 등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1603년(선조 36) 현감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다.
1661년(현종 2) 현감 이재중이 읍기(邑基)를 하동군 횡천(橫川)으로 옮겼으며, 1665년(현종 6)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내기(內基)에 문묘와 하동향교를 이건하였다. 1730년(영조 6) 부사 정덕명이 문묘만 하동읍 두곡리 성전골로 이전하였다. 1736년(영조 12) 부사 민진기가 하동향교를 하동군 하동읍의 서교동으로 이건하고, 1744년(영조 20) 부사 전천상이 두곡리의 문묘를 하동향교 옆으로 이전하여 문묘와 향교가 같은 자리에 세워졌다. 1847년(헌종 13) 부사 최섭이 하동향교를 중수하였다.
1907년(순종 1) 군에서 설립한 하동학교(河東學校)가 향교에서 개교됨으로써 유생(儒生)을 모집하는 일이 중지되었는데, 사실상 1894년(고종 31) 과거 제도의 폐지로 향교의 기능은 상실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문묘에서 향사만을 모실 뿐이다.
문묘 향사와 건물 관리를 위해 도유사(都有司)와 장의(掌議) 등을 두었으나, 1908년(순종 2) 도유사를 직원으로 개칭하고 그 후 1947년 다시 직원을 전교(典校)로 명칭 변경하였다. 1980년대에 서재(西齋)와 양사재(養士齋) 등을 복원하였다. 양사재의 예전 명칭은 흥학재(興學齋)로 부사 이남원이 창건하였는데,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3년 복원하면서 ‘양사재’라 이름 하였다. 양사재 안에 사마재가 있는데, 생원과 진사의 유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형태]
건물은 대성전(大成殿), 동무(東廡), 서무(西廡), 내삼문(內三門),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풍화루(風化樓), 양사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건물을 경사지에 직렬형으로 배치하여 강학 장소가 앞쪽에 있고 문묘가 뒤쪽에 자리한다. 명륜당이 대성전, 내삼문, 풍화루를 잇는 중심축 상에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비켜 위치하고 있으며, 동재와 서재도 지형적 제한 때문인지 명륜당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이다. 1고주(高柱) 7량(樑) 구조에 2출목(出目) 3익공(翼工) 결구 형식을 취하였다.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로, 규모가 크고 높은 외관을 이루며 전퇴를 개방하였다. 공자(孔子)를 정위(正位)에 모시고, 안자(顔子)와 자사(子思)는 동편에, 증자(曾子)와 맹자(孟子)는 서편에 각각 배향하였다. 송조(宋朝) 이현(二賢)과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도 서열에 따라 동서로 나누어 각각 십현위(十賢位)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이며, 3량 구조에 민도리 양식으로 되어 있다. 측벽에 격자살의 채광창을 달았고 내부 바닥은 시멘트이며, 대성전 축에 대칭으로 배치되었다. 문묘부의 영역이 충분한데도 양무를 1칸 정도 겹쳐 배치한 것은 특이한 예이다. 1949년 공문십철(孔門十哲) 및 송조 사현(宋朝四賢)의 위패와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을 대성전으로 옮겼으므로, 현재는 비워져 있다.
내삼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이 솟을삼문 형식의 출입문이며, 가운데 문 위에 익공형의 다포(多包)를 올려 장식하였다. 양 끝 칸에 방을 만들어 제기고(祭器庫)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5량 구조에 초익공(初翼工) 결구를 하였다. 양 협간(夾間)은 방으로 동쪽에는 전교실(典校室), 서쪽에는 헌관실(獻官室)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으로, 강학 장소이다. 방과 대청의 전면과 후면을 모두 분합문(分閤門)으로 개조해 전퇴가 없어졌다. 팔작지붕 4귀에는 활주(活柱)를 받쳤다.
동재는 정면 4칸이고 서재는 3칸이다. 양재(兩齋) 모두 지붕 형태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을 혼합한 형태로, 향교 전면에서는 양재의 측면이 나타나며 지붕 모양은 팔작지붕으로 보인다.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인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2층 누각 팔작지붕이다. 앞에는 하마비가 있다. 6·25 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6년 복원하면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한식 토기와 잇기를 하였다.
[현황]
하동향교는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동재는 유생의 강학 장소로, 장의(掌議)와 색장(色掌)의 임원 제도가 있었으나 2011년 현재는 제관(祭官)의 숙소로 사용된다. 현재 향교 교임은 전교(典校) 1명, 재임(齋任) 1명, 총무 1명, 장의 40명이다. 하동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지내며, 11월에는 군 내 70세 이상의 노인을 초청하여 기로연을 베풀며 공경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군 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과 한문교육을 하며, 군민을 대상으로 한시와 시조창 반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