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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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昌輝孝子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lial Piety of Gim Changhwi |
이칭/별칭 | 고 효자 통정대부 용양위부호군 김해김공지비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101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연가 |
건립 시기/일시 | 19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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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1011-1 |
성격 | 효자비 |
관련 인물 | 김창휘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35㎝[높이]|42㎝[너비]|18㎝[두께] |
소유자 | 김해 김씨 종중 |
관리자 | 김해 김씨 종중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건립 경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창휘 효자각을 짓고 김창휘 효자비를 세웠다.
[위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1011-1번지 평촌마을 내에 위치한다.
[형태]
비석의 몸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규형이다. 화강암 기단 위에 팔작형의 덮개가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42㎝, 두께 18㎝이다.
[금석문]
비문에는 ‘효성이 지극하여 병환 중의 아버지 곁에서 변을 맛보며 8년 동안 병세를 살폈고, 날마다 북두칠성을 향해 아버지의 쾌유를 빌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었더니 회생하여 1년을 더 살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세상을 뜨니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정기(鄭琦)가 비문을 짓고, 하재운(河載云)이 글씨를 썼다.
[현황]
김해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여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비문이 한자로 되어 있어 한글 전용 세대가 해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