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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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獨立促成國民會河東郡靑年聯盟 |
영어의미역 | The National Congress for the Promotion of Korean Independence, Hadong-gun Youth Feder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상환 |
[정의]
광복 직후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연맹.
[개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1945년 10월 결성된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1946년 2월에 통합하여 조직된 국민운동 단체다. 모스크바 삼상 회담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는 반탁 운동과 좌익 운동 봉쇄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연맹은 위원장을 전진한, 부위원장을 유진산·이찬우로 하여 조직된 이승만의 외곽 청년 조직이었다.
[변천]
하동에서도 반탁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1945년 12월 28일 여경엽을 위원장으로 하여 반탁 하동군위원회가 조직되고, 1946년 1월 2일 반탁 하동 군민 대회가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읍내 시장에서 개최되었다. 4월에는 하동에서 민주주의 민족전선[좌익 단체들의 연합체] 관계자 검거 선풍이 불기도 하였다. 하동군 내의 이러한 움직임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지부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청년연맹은 1946년 1월 23일 결성되었다. 위원장에 신용관(辛容寬)을 선임하고, 12개 읍면에 청년연맹 지부를 두었다. 4월에는 신재우(辛在祐) 이하 몇 명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지부를 만들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6년 3월 6일 하동군 고전면 배다리 장날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청년연맹의 신용관, 오재인의 후원 아래 고전면 청년연맹 결성 대회를 갖고, 고전면에 조직되어 있던 조선인민공화국노동조합 간판을 제거하였다. 이날 결성 대회는 대회를 무산시키려는 좌익 세력의 폭력적 저지 움직임 때문에 유혈 사태까지 있었으나 정도화, 정쾌현, 정주룡, 김경수 등의 활약으로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지부의 활동은 더욱 격렬하였다. 민주주의민족전선 산하 각 단체원들을 불법 체포, 불법 수색, 무조건 구타했으며 일반인에 대한 가택 침입도 강행하였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경찰을 찾아가 원조를 청했고, ‘해방 후 인민위원회 놈에게 압제를 받았으니 때린다’고 취재 기자들에게도 당당히 말하였다.
1946년 4월 25일에는 어업조합 서기를 곤봉으로 난타하였다. 5월 3일에는 경관 2명과 함께 수명을 난타하고, 그 중 2명을 지서까지 납치하여 ‘인민파 정신을 청소하고 우익 정신을 가져라’며 구타하였다. 또한 같은 날에 독촉원이 민선 면장 하영숙을 식도로 협박하였다. 5월 13일에는 청년 동맹원의 집을 야간 습격하여 가족까지도 난타하고, 경찰과 함께 인민위원회 건물 임대주를 폭행하는 등 여러 건의 폭행을 감행했으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고 체포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