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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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道東旌閭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Jeong Dodo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105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용규 |
건립 시기/일시 | 18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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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1059 |
성격 | 정려각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기와집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도동(鄭道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개설]
정도동은 본관이 오천(烏川)이고, 자는 행지(行之)이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어머니 이씨가 천연두를 앓아 아버지 건암공(蹇庵公) 정홍적(鄭洪績)이 나가 피하라고 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밤낮으로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였지만 결국 뜻을 얻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빈소를 차리자마자 자신 또한 천연두에 걸려 치료가 필요하였으나, 장사를 지내고 묘소 옆에서 여묘를 살면서 밥과 채소는 먹지 않고 하루에 두 번 보릿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며 지냈다. 아침저녁으로 묘소에서 곡을 한 뒤 큰 내를 건너가서 아버지를 보살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냇물을 건너기 편하게 다리를 만들어 준 뒤 ‘효자교’라 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정도동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 건립되었다.
[형태]
정도동 정려(鄭道東旌閭)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얕은 기단석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은 이익공(二翼工)[기둥 위에 덧붙이는 쇠 받침이 둘로 된 익공]으로 장식하였다.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건물 안팎에 단청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아버지를 뵙기 위해 밤마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다리를 놓아 줄 만큼 정도동은 효행이 극진하였다. 정도동의 효는 당대뿐 아니라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