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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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鶴洞-黃俊良- |
영어의미역 | Cheonghakdong by Hwang Junry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호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1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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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63년 |
성격 | 한시|오언 율시|유산시 |
작가 | 황준량(黃俊良)[1517~1563] |
[정의]
조선 전기 황준량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지리산 청학동을 유람하며 그 경관을 노래하고, 최치원을 생각하며 읊은 한시.
[개설]
「청학동(靑鶴洞)」은 조선 전기 문신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문집 『금계집(錦溪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황준량은 1545년(인종 1) 상주향교(尙州鄕校)의 교수로 있던 초여름에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는데, 유산기는 남기지 않았다. 다만 「청학동」 외에 장편시 「유두류산기행편(遊頭流山紀行篇)」과 「천왕봉(天王峰)」, 「군자사동(君子寺洞)」 등 10여 편의 시가 황준량의 문집에 실려 있다. 그중 「유두류산기행편」은 유람의 출발에서부터 귀가까지의 일정에 맞춰 지리산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서술을 포함해 사상적 정감까지 세세히 표현된 대작이다.
「유두류산기행편」과 여타 시를 종합하여 황준량의 유람 코스를 유추해 보면, 함양 학사루(學士樓)→엄천→용유담→군자사를 경유해 천왕봉에 올랐고, 성모사(聖母祠)에서 유숙하며 이튿날 새벽 일출을 구경한 뒤 향적사와 창불대(唱佛臺)를 거쳐 청학동을 유람하였다. 「청학동」은 그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유학자들에게 있어 지리산 청학동은 하동 쌍계사(雙磎寺) 뒤편 불일폭포 주변에 있다고 전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이었으며, 후기로 내려올수록 지리산 청학동 유람에서 그 외연을 넓혀 삼신동의 신흥사(新興寺)와 칠불암(七佛庵) 일대까지 유람 코스에 포함시키고 있다. 청학동은 청학이 깃들어 살아 인간 세계와는 다른 신선 세계로 알려져 있으며, 최치원(崔致遠)[857~?]이 청학동에 들어와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갔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청학동」은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최치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각기 다른 형식의 두 수에 담아 노래하였다.
[구성]
두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시는 오언 율시로 되어 있고, 뒤의 시는 칠언 절구로 되어 있다. 앞의 시는 수련에서 청학동의 자연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하였고, 함련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대해 묘사하였다. 경련에서는 신선을 찾아가는 길을 그렸고, 미련에서는 신선을 만나지 못한 공허함을 노래하였다.
뒤의 시는 기구에서 청학동에 깃들어 사는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승구에서는 학의 외양에 대해 노래하였다. 전구에서는 한 번 신선이 되어 간 최치원이 다시는 오지 않음을 노래하였고, 결구에서는 그 공허한 마음을 노래하였다.
[내용]
망리선구시(望裏仙區是)[바라보니 신선의 구역이 여기인가 생각되고]
암만사회계(巖巒似會稽)[바위 봉우리는 회계(會稽)의 것과 비슷하네]
계번추만학(溪翻秋滿壑)[늦은 가을 골짜기의 시내는 일렁거리고]
송명학심서(松暝鶴尋棲)[학이 찾아 깃든 소나무는 어두컴컴하네]
진몌풍사하(振袂風斯下)[소매를 떨치니 바람이 이에 내려오고]
심진로불미(尋眞路不迷)[진리를 찾는 길은 헷갈리지 않는다]
고인재하허(高人在何許)[고상한 선비는 그 어느 곳에 있는가?]
공청백원제(空聽白猿啼)[흰 잔나비 우는 소리 부질없이 듣는다]
표연선학출운소(飄然仙鶴出雲霄)[날렵하게 신선의 학은 구름 낀 하늘에서 나오니]
문채천추견봉모(文彩千秋見鳳毛)[천년에 한 번 채색 무늬 봉황의 털을 보았다]
화표월명혼불반(華表月明魂不返)[화표주(華表柱)에 달 밝은데 혼은 돌아오지 않으니]
한송풍기야소소 억고운(寒松風起夜蕭蕭 憶孤雲)[차가운 솔에 바람 부니 밤은 쓸쓸하기만 하네]
이를 풀이하면, 앞의 시의 제1~제2구에서는 청학동의 아름다운 경관이 마치 신선 세계와 같고, 바위가 많은 봉우리는 회계산과 같다고 하였다. 회계산은 중국 저장 성[浙江省] 소흥에 있는 산으로, 왕희지(王羲之)[307~365]의 환아정(換鵝亭)과 함께 아름다운 산수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에서는 하동의 산수가 회계산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이다.
제3~제4구에서는 가을 산골짜기의 모습과 학이 깃들어 있는 소나무에 대해 읊었다. 제5~제7구에서는 소매를 떨치며 진리를 찾아 내려가는 길이 비교적 어렵지 않음을 말하였다. 제7~제8구에서는 자신이 그리는 덕이 높은 선비를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을 노래하였다.
뒤의 시 제1구에서 ‘선학(仙鶴)’은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학을 말하고, ‘운소(雲霄)’는 구름 낀 하늘을 말한다. 제2구의 ‘천추(千秋)’는 오랜 세월을 말한다. 제3구의 ‘화표(華表)’는 곧 화표주(華表柱)를 말하는데, 요동에 사는 정령위(丁令威)라는 신선이 되어 하늘나라로 갔다가, 천년이 지난 뒤에 학을 타고 요동 성문의 화표주에 앉아 있으니 어린아이가 활을 가지고 쏘려 하였다. 그러자 신선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세속에 얽매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탄식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혼불반(魂不返)’은 정령위가 신선이 되어 갔다가 천년 뒤에 학을 타고 돌아왔지만, 최치원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의의와 평가]
두 시는 「청학동」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된 별개의 시이지만, 지리산의 가장 신비한 지역으로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을 읊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리산 청학동과 최치원의 관련성을 읊은 작품인 동시에 청학동을 신선 세계로 여기는 생각을 바탕으로 지은 시로, 조선 전기 유가의 지리산에 대한 신선 인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