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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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升煥 |
영어음역 | Lee Seunghwan |
이칭/별칭 | 치성(致聖),만회(晩悔)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길찬 |
출생 시기/일시 | 184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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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8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월매고개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함안(咸安)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익능(益能). 매헌공(梅軒公) 이인형(李仁亨)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의 원종일등공신 이장(李檣)의 9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이찬(李欑)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贈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 이정립(李廷立)이며, 아버지는 수숭정대부 용양위상호군 동지중추부사(壽崇政大夫龍驤衛上護軍兼同知中樞府使) 효자 이진복(李震復)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회산 황씨(檜山黃氏), 증정부인(贈貞夫人)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다.
[활동 사항]
이승환(李升煥)[1843~1918]은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고 단정 장엄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의 명을 받들어 순종하며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아뢰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잠자리 살피는 예를 성실히 행하였다. 성장하여서도 힘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겨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소리 내어 슬피 우니 무릎 꿇었던 자리에 풀이 마르고 구덩이가 생겼다고 한다. 동네 사람이 동네 어귀에 ‘효자촌’이라고 간판을 세웠는데, 일본 병사도 이를 보고는 한 번도 침범하지 못하였다. 세상을 뜰 때까지 어버이 제사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고, 40리 성묘 길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1919년 이승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포창 완의문(完議文)을 지었다. 1990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월매고개 아래에 기적비를 세웠으며, 비문은 성균관장 김경수(金敬洙)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