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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13
한자 河達聖
영어음역 Ha Dalseong
이칭/별칭 청언(淸彦),국헌(菊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4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91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식동지도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진양(晉陽)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청언(淸彦), 호는 국헌(菊軒)이다.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다. 하홍달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며, 할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 하덕원(河德元)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하대항(河大恒)이다. 어머니는 신경백(辛景伯)의 딸 영산 신씨(靈山辛氏)이다. 전처는 함양 박씨(咸陽朴氏)이며, 후처는 진양 정씨(晉陽鄭氏)이다. 모두 후사가 없어 아우의 아들인 하석봉(河錫鳳)을 양자로 삼았다.

[활동 사항]

하달성(河達聖)[1734~1791]은 어려서부터 강개(慷慨)한 기절(氣節)이 있었으며, 가학(家學)을 계승하였다. 종천서원(宗川書院)겸재 하홍도를 모시기 위해 1676년(숙종 2) 건립한 서원으로, 후에 경재(敬齋) 하연(河演)[1376~1453]과 하진을 추향하였다. 그런데 진주목사 조덕상(趙德常)이 겸재의 문집과 연보(年譜)를 빌미로 삼아 “율곡(栗谷)우계(牛溪)를 비방하고 윤선도(尹善道)허목(許穆)을 높였다”라면서 경상감사 조엄(趙曮)에게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1759년(영조 35) 종천서원에서 겸재의 위패를 출향(黜享)하고 『겸재집(謙齋集)』의 판본(板本)과 인본(印本)을 불사르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종천서원 원변(宗川書院院變)’이라고 일컫는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하달성은 통분하여 겸재의 신원(伸寃)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하였으며, 이 일에 연루되어 감옥에 수감된 겸재의 증손 괴전와(愧全窩) 하대관(河大觀)[1698~1776]이 석방되도록 백방으로 일을 도모하였다.

결국 1778년(정조 2) 왕이 조엄과 조덕상의 관직을 삭직하고 종천서원 원변의 주동자 3명을 엄형에 처하였으며 기타 관련자를 유배시키는 것으로 사건의 결말이 지어졌다. 하달성종천서원 원변의 발단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결사적으로 일을 주선하였으며, 이것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여 『종천서원변록(宗川書院變錄)』 4책을 편찬하였다. 당시 함께 일을 도운 사람으로 강필준(姜必儁), 박선상(朴鮮祥), 정순신(鄭舜臣), 손여흠(孫汝欽), 이지흥(李之興) 등이 있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종천서원변록』 4책과 『국헌유고(菊軒遺稿)』 2권 1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하동군 옥종면 안식동(安息洞) 의약봉(醫藥峰)에 있다.

[참고문헌]
  • 『옥종면지』 (옥종면지편찬위원회, 2000)
  • 신종우의 인명사전(www.shinjongwoo.co.kr)
  • 진양하씨사직공파(www.jinjuh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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