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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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淵祠 |
영어공식명칭 | Yongyeonsa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길 78-9[여수리 1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용연사 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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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1년 - 용연사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8년 - 용연사 복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5년 - 용연사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 용연사 수리 |
현 소재지 | 용연사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길 78-9[여수리 118]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소유자 | 순천김씨 종중 |
관리자 | 순천김씨 종중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사우.
[개설]
용연사(龍淵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명량대첩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김정언, 김정윤 형제를 배향한 사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김정언(金廷彦)의 자는 국보(國甫), 본관은 순천이다. 동생 김정윤과 함께 효성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사 유형(柳珩)의 막하에 있다가 병량미를 운반하고 병사를 조달하였다. 해남 앞 바다에서 적을 물리쳐 많은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김정윤(金廷允)의 자는 국신(國信)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격문을 내어 의병을 모집하자 형 김정언과 함께 참여하였다. 싸움에서 항상 앞장섰으며 적을 물리치는 등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병자호란[1636] 때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수사 성하종(成夏宗)과 함께 배를 내어 강화도에 갔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위치]
용연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 새내미 마을 안쪽에 있다.
[변천]
용연사는 조선 후기 순조 때 향내 유림의 발의로 창건하여 김정언과 김정윤 형제를 배향하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에 따라 헐렸다가 1901년(광무 5)에 개축하였다. 1948년 복설하였고 1985년과 1987년 수리하였다.
[형태]
용연사는 앞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이고 팔작지붕집이다.
[현황]
용연사는 아래쪽에 1965년 건립한 침계당(枕溪堂)이 있다. 용연사 안에 김정윤의 교지 등 고문서가 있다. 용연사사적비도 경내에 있다. 해남향교에서 종중과 함께 매년 음력 8월에 제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연사는 해남 세거 씨족의 선현 추숭 활동과 해남의 향촌 사회사를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