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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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節祠 |
영어공식명칭 | Chungjeolsa |
이칭/별칭 | 경호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53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652년 - 경호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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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충절사 중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81년 - 충절사로 개칭 |
현 소재지 | 충절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534-1 |
원소재지 | 경호사(鏡湖祠)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서원리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하동정씨 종중 |
관리자 | 하동정씨 종중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652년 건립된 정운 장군 사우.
[개설]
충절사(忠節祠)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공신 정운(鄭運)[1543~1592] 장군을 배향한 사우이다. 정운은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부산포 몰운대(沒雲臺)에서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상수사가 전라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논의가 분분하자 정운은 “영남이 함락되는데 이를 구하지 않으면 호남이 어찌 홀로 온전하리오. 나아가서 영남을 구하는 것이 호남을 지키는 것이오. 어찌 머뭇거리면서 시일을 허비할 것이오. 내가 마땅히 앞장서 죽으리다.”고 하였다. 본관은 하동, 자는 창진(昌辰)이며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8년(선조 41) 특명으로 정려를 받았으며 1681년(숙종 7) 정운 충신각이 건립되었다. 정운 충신각은 대산마을 입구에 있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76호이다. 정운은 고흥 쌍충사에도 배향되었다. 충절사가 있는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는 조선시대에 영암군 옥천종면에 속한 땅이었는데 1906년 해남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옥천면이 되었다.
[위치]
충절사는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 길가에 있다. 옥천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4㎞ 거리이다. 동쪽으로 노적봉과 서로는 원경산[첨봉산]이 감싸고 있으며 앞은 평야 지대이다.
[변천]
충절사는 정운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1652년(효종 3) 해남군 옥천면 서원리에 경호사(鏡湖祠)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1681년(숙종 7) 충절사로 사액을 받았다가 조선 후기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고종 8) 헐렸다. 이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위치로 옮겨져 봉안하다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다. 1975년 중건하였다.
[형태]
충절사 신실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내부에는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현황]
충절사는 해남향교에서 종중과 함께 매년 음력 8월 제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충절사는 해남 세거 씨족의 선현 추숭 활동과 해남 향촌 사회사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