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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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池祠 |
영어공식명칭 | Yongjisa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산3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948년 - 용지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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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7년 - 용지사 추원당 중수 |
현 소재지 | 용지사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산39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동복오씨 사소공파종중 |
관리자 | 동복오씨 사소공파종중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1948년 건립된 동복오씨 사우.
[개설]
용지사(龍池祠)는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다. 1948년 건립하여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吳克信)[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그리고 해금(海錦) 오달운(吳達運)[1700~1748]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단재 오극신은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구국의 충신으로 명성을 떨쳤다.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선무원종공신에 훈록되었다. 오극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오계적, 조카 오홍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 막하로 갔다. 명량해전에 출전하여 선봉장으로 수많은 왜선을 격파하다가 아들 오계적과 함께 순절하였다. 용호 오홍적은 문무를 겸비한 선비로 오극신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해 흑석산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해금 오달운은 1740년(영조 16)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을 지냈다. 벼슬에 나가기보다는 실용 학문 연구에 진력하였다. 문집으로 『해금집』을 남겼다.
[위치]
용지사는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 안쪽의 동복오씨 세장산 아래쪽에 있다.
[변천]
용지사는 『계곡면지』에 조선 숙종 때 건립되어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1948년 동복오씨 후손과 향내 유림의 발의로 동복오씨 오극신, 오홍적, 오계적, 오달운 4위를 배향하였다. 마을 안쪽 산등성이에 있는 추원당은 1967년 중수하였다.
[형태]
용지사는 앞면 3칸, 옆면 1칸, 맞배지붕집이다. 삼문과 기와 담장으로 둘러 있다. 사우 옆에는 영모재가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로 팔작지붕집 건물이다.
[현황]
용지사는 매년 음력 10월 11일 동복오씨 사소공파종중에서 향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