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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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有吉忠臣碑 |
영어공식명칭 | Leeyugil Chungsinb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은선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6년 06월 10일 - 「이유길 충신비」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253-49에서 박연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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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7년 - 「이유길 충신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0월 13일 - 「이유길 충신비」 해남 이유길 유허비 해남군 향토유적 제16호 지정 |
관련 지명 | 해남 이유길 유허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 |
채록지 | 평활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253-49 |
성격 | 설화|인문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유길|이순신 |
모티프 유형 | 충신|유허비|혈삼 무덤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해남 이유길 유허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이유길 충신비」는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유길은 명량대첩(鳴梁大捷)[1597]과 건주(建州)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명량대첩과 건주 전투에서 세운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유길의 고향인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채록/수집 상황]
「이유길 충신비」는 2016년 6월 10일 삼산면 평활리 253-49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박연호[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서 태어난 이유길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열여덟 살의 나이에 스스로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에게 찾아가 장졸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명나라가 후금(後金)을 토벌할 때 조정에 출병을 요청하여 건주 출병이 결정되자 이유길도 참전하였다. 건주 전투에서 조선군이 불리한 상황에 몰렸을 때 다른 장수들은 모두 항복하였지만 이유길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이유길은 적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는데, 숨이 끊어지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을 찢어 죽은 날짜와 ‘사(死)’ 자를 써서 자신이 타던 말의 갈기에 묶어 보냈다. 한삼 자락을 갈기에 맨 이유길의 말은 사흘 밤낮을 달려 집에 도착하였고, 구슬피 울다 숨을 거두었다. 이유길의 가족들은 죽은 말의 갈기에 매여 있던 피로 쓴 글씨를 발견하고 선산에 한삼 자락을 묻어 장사를 지냈다.
이후 고종(高宗)[1852~1919] 때에 충신 이유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유허비를 세워 주었다.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2000년 10월 13일 해남군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모티프 분석]
「이유길 충신비」의 모티프는 ‘충신’, ‘유허비’, ‘혈삼 무덤’ 등이다. 「이유길 충신비」는 훌륭한 공을 세운 역사적 인물의 행적에 관한 인물 전설이면서 인공적 건축물이 세워지게 된 유래에 관한 인문 전설이기도 하다. 「이유길 충신비」는 역사적 인물의 사실적 행적을 바탕으로 시신 대신 피로 쓴 천을 묻은 ‘혈삼 무덤’이라는 일어날 수도 있는 상상의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