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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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化川里 |
영어공식명칭 | Hwa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주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화천리(化川里)의 화천(化川) 마을은 옛날 이 마을 바로 앞에 큰 시내가 흘렀고 시내를 따라 수양버들이 많이 있어 유천(柳川)이라 불렀다. 그 후 이 시내가 마을 뒤로 흐르고 수양버들이 없어짐에 따라 마을 명을 화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화천리의 성호(成湖) 마을은 마을 뒷산 능선이 월(月) 자 형태로 되어 있고 제방 축조 전 침수로 인하여 마을에서 낙동강(洛東江) 쪽으로 큰 늪이 형성되어 이 늪이 호수처럼 생겼다고 하여 월호(月湖)로 불러 왔다. 광복 후 수년 간 월호라 부르다가 동네가 아무런 발전이 없어 마을 명을 바꾸어 보자는 여론에 따라 1950년대에 와서 지금의 이름인 성호로 개칭하였는데 지금도 월호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마을 입구에 300년이 된 회화나무와 그 밑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우물 옆에 나무를 심으면 마을이 태평하고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형성 및 변천]
화천리가 속한 칠북면은 전기 가야 연맹인 변한(弁韓) 12국의 접도국(接塗國)이었다. 고려 때인 940년(태조 23) 이후 칠원현의 북면이 되었다. 1895년 5월 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칠원군 북면이 되었다. 1908년 함안군에 편입되면서 칠북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의 부·군·면 통폐합 시 칠서면·칠원면·영산군 길곡면에 속해 있는 일부 동리가 칠북면에 합쳐지면서 9개 동리로 개편되었고, 이때부터 화천리는 함안군 칠북면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3년에 칠북면에 속해 있던 운서리·운곡리가 칠원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화천 마을은 칠북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700m정도 떨어진 평야 마을로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위치하고 있다. 성호 마을은 칠북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2.1㎞ 떨어진 곳에 있으며, 낙동강의 배후 습지 지역으로 제방 축조 전에는 침수로 인한 늪지대였다. 그러나 제방 축조 및 경지 정리로 현재는 벼와 과수를 생산하고 있는 농업 지역이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168가구에 313명[남 173명/여 1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화천동(化川洞)과 성호동(成湖洞) 2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화천동에는 86가구에 182명[남 102명/여 80명], 성호동에는 82가구에 131명[남 71명/여 60명]이 살고 있다. 화천동은 비옥한 평야를 끼고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으며, 주민들은 울창한 버드나무 중 제일 오래되고 큰 나무를 골라 그 나무를 성황나무라 부르면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전 주민이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농악을 앞세워 지신을 밟았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해마다 정월에는 마을 단위로 지신밟기와 성주풀이를 하고 있으며, 1991년 12월에 함안 화천 농악(咸安化川農樂)이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성호동은 위치상은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동태동장춘사(長春寺) 뒤 무릉산(武陵山) 서쪽 말단 능선에 형성되어 있다. 낙동강 제방 축조 전에는 침수지로서 빈촌이었으나 1962년의 제방 축조, 1971년의 경지 정리로 수리 안전답(水利安全畓)이 되었고, 미곡 및 과수[복숭아, 단감] 재배를 주업으로 하며, 김씨와 박씨의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