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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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茅谷里 |
영어공식명칭 | Mo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주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모곡리(茅谷里)는 띠가 많았다 하여 띠실이라 부르다가 한문으로 음차하여 모곡(茅谷)이라고 불렀다. 한편 고려 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자 현자(賢者)들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숨어 버릴 때 두문동 72인 중 한 명인 이오(李午)가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다. 은거지 주위에 담장을 쌓아 담장 밖은 신왕조(新王朝) 조선(朝鮮)의 땅일지라도 담 안은 고려(高麗) 유민(遺民)의 거주지임을 명시하는 고려 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標碑)를 세워 고려동이라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장내(墻內) 마을은 담장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형성 및 변천]
모곡리는 산인면에 속하며, 원래 산인은 안닐대리[安尼大里]와 산법미리(山法彌里)로 나뉘어 있었다. 1586년(선조 19) 겨울에 정구(鄭逑) 군수(郡守)가 안닐대[安尼大]를 안인(安仁)으로, 산법미(山法彌)를 산익(山翼)으로 고쳤다. 그 후 조선 후기에 와서 안인리는 안인면(安仁面), 산익리는 산익면(山翼面)으로 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군·면 폐합 시 안인면과 산익면이 합쳐져 산인면(山仁面)이 되면서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가 되었다. 동부 지역인 산익면은 모곡리에 면 청사를 두고 모곡·신산·입곡의 3개 리를 관할하였고, 서부 지역인 안인면은 내인리에 면 청사를 두고 송정·내인·부봉·운곡의 4개 리를 관할하였다. 안인면과 산익면의 합병 후에는 모곡리에 면 청사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자연환경]
북쪽은 400m 내외의 자양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 신산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다.
[현황]
산인면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299가구에 698명[남 350명/여 3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도천동(道川洞)·갈전동(葛田洞)·장내동(墻內洞)·수동동(洙東洞)·대천동(大川洞)의 5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도천동에는 36가구에 75명[남 34명/여 41명], 갈전동에는 100가구에 229명[남 108명/여 121명], 장내동에는 40가구에 93명[남 45명/여 48명], 수동동에는 51가구에 145명[남 83명/여 62명], 대천동에는 72가구에 156명[남 80명/여 76명]이 살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82호인 함안 문암산성(咸安門巖山城)과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인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