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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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郡北 協同組合 |
영어공식명칭 | Gunbuk Cooperative Feder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었던 협동 조합.
[개설]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구락부를 주도한 지역 유지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 나타난 산업 조합의 유형은 일본처럼 신용 조합이 중심이 아니라 생산 조합 또는 소비조합의 성격이 강했다. 국내에서 나타난 소비조합 운동은 첫째, 소비자의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 둘째, 사회 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 운동론적 입장, 셋째, 자본주의 생산력 증대에 역점을 둔 입장 등 여러 가지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신간회 각 지회에서 추구한 협동조합론은 로치텔 방식의 협동조합론을 충실히 따르는 협동조합사 계열의 협동조합론이었다. 로치텔 방식의 운영 원칙은 첫째, 1인 1구 주의, 둘째, 현금 판매 방식, 셋째, 시가 판매, 넷째, 시가 판매에 따라 생긴 차익[이익]은 각 조합원의 이용고에 비례해서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설립 목적]
군북 협동조합은 농민들의 생활 보호, 경제적 문제의 해결과 자립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경상남도 함안에서 협동조합 운동은 함안 읍내보다는 군북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신간회 함안 지회가 결성되고 1년이 지난 1928년 11월 28일에 조병석, 조용경, 이현철, 변기섭 등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군북, 죽남, 법수 3개 면을 망라한 군북 협동조합을 군북면 사무소에서 결성했다. 군북 협동조합의 임원으로는 조병석, 조용경, 이현철, 변기섭, 조용복, 변면섭, 강대승, 안봉중, 안종선 등이 활동하였다.
함안 지역의 청년 동맹과 농민 조합 등에서 활동한 소장층의 사회 운동가들은 협동조합 운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저항 엘리트들은 협동조합 운동을 썩 달갑게 보지 않은 채, 오히려 농민 조합 내의 소비조합부를 통해서 지역 민중의 일상적 경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협동조합 운동은 1931년 신간회 해소 이후에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군북 협동조합도 1935년까지 단체는 확인이 되지만 특별한 활동 내역은 보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 하에서 농민의 삶을 보호하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신간회 해소 이후 활동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