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재 실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33
한자 覲齋 實記
영어공식명칭 Geunjaesilgi
이칭/별칭 『근재 선생 실기(覲齋先生實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익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근재 실기』 국역본 근재 선생 실기 국역 간행 위원회 간행
소장처 경상 대학교 문천각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900]
간행처 근재 선생 실기 국역 간행 위원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14길 38[효제동 105-1]
성격 문집
저자 이맹현
간행자 이현호|이갑종|이윤영|이기환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17자
규격 20.5×29.5㎝
어미 내향 사엽 화문 어미(內向四葉花文魚尾)
권수제 근재 선생 실기(覲齋先生實紀)
판심제 근재 선생 실기(覲齋先生實紀)

[정의]

경상남도 함안에서 말년을 보낸 조선 중기 문신 이맹현의 문집.

[저자]

이맹현(李孟賢)[1436~1487]은 본관이 재령(載寧), 자는 사성(師聲), 호는 근재(覲齋)이다. 할아버지는 이오(李午), 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지낸 이개지(李介智)이다. 어머니는 목사를 지낸 하경리(河敬履)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1460년(세조 6)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홍문관 부제학, 이조 참판, 나주 목사 등을 지냈다. 나무 목사를 지낸 후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함안으로 내려와 극진한 효성을 다하였는데, 1486년, 1487년에 잇달아 모친상과 부친상을 당해 슬퍼하다가 건강을 해쳐 이맹현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근재 실기(覲齋實紀)』는 진주에 살던 후손 이현호(李賢浩)와 이갑종(李甲鍾)이 각종 사료에 실려 있던 이맹현의 기록들을 모아서 16세손 이윤영(李允永)과 의논한 뒤 간행을 결정하였고, 이에 후손 이기환(李基煥)이 자금을 부담하여 완성하게 되었다. 서문이 없어 편찬자를 알기 어렵다. 『근재 선생 실기(覲齋先生實紀)』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내향 사엽 화문 어미(內向四葉花文魚尾)이며,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7자이다. 크기는 가로 20.5㎝, 세로 29.5㎝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근재 선생 실기(覲齋先生實紀)'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은 양사(兩司)에서 오백창(吳伯昌)을 논하는 소(疏)인 「양사 논오백창소(兩司論吳伯昌疏)」, 김언신의 복직을 청하는 「청김언신 복직소(請金彦辛復職疏)」, 승정원이 어그러져 다투는 일 및 사람을 쓰는 데 전자를 따지지 말 것을 논하는 「논정원 괴쟁급용인물계전자소(論政院乖爭及用人勿計前資疏)」, 재이로 인한 시폐를 구제할 것을 청하는 「인재이구시폐소(因災異救時弊疏)」, 오도의 구황 사의를 논하는 「논오도 구황사의소(論五道救荒事宜疏)」 등 5편의 소와, 부처에게 기도하여 비를 구하지 말 것을 청하는 차자(箚子)인 「청물도불구우차(請勿禱佛求雨箚)」 1편 및 4편의 시(詩)로 되어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청백리전(淸白吏傳)」, 묘비문(墓碑文), 척록(摭錄), 「황주객관중신기(黃州客館重新記)」, 「창화시(唱和詩)」 등으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근재 실기』이맹현이 올린 각종 상소문과 차자를 통해 그의 사상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으며, 그와 관련된 각종 사료들이 포괄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써의 가치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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