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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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純 |
영어공식명칭 | Jo S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광철 |
[정의]
고려 후기 위화도 회군에 반대한 후 함안 지역에 은거한 무신.
[개설]
조순(趙純)은 1388년(우왕 14) 4월 장수로서 군사를 통솔하여 요동 정벌에 참여하였다. 정벌군이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우군 도통사 이성계(李成桂)가 회군(回軍)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함안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할아버지는 쌍성 총관부 출신으로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진 조돈(趙暾)이고, 아버지는 검교 한성 부사를 지낸 조인규(趙仁珪)이다. 조인벽(趙仁壁)과 조인옥(趙仁沃)은 각각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조순의 활동 내용은 1726년(영조 2) 3월 함안 소재 삼현사(三賢祠)에 사액(賜額)을 청하는 경상도 생원 박성시(朴聖時) 등의 상소문에서 처음 드러났다. 그 내용은 영조 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함안 인물 충신조 조순에 관한 서술에도 반영되었다. 조순은 1388년(우왕 14) 4월 요동 정벌을 시작할 때 장수로서 군사를 통솔하여 정벌에 참여하였다. 정벌군이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우군 도통사 이성계가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워 회군을 결정하자, 조순은 "상국(上國)을 침범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왕명을 거역하고 급히 회군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하다."고 하면서 회군에 극력 반대하였다. 회군 문제를 둘러싸고 같은 문중 안에서 백부 조인벽(趙仁壁)과 숙부 조인옥(趙仁沃)은 회군에 찬성했고, 조순과 그의 아버지 조인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결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개경을 공격하자, 조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다 함안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이성계가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거부하며 지조를 지켰다. 이에 이성계가 특명으로 함안의 그의 집 앞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워 예를 표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