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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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休復 |
영어공식명칭 | I Hubok |
이칭/별칭 | 사장(士長),양졸정(養拙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진희 |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공도공(恭度公)이문화(李文和)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소고(嘯皐)이원성(李元盛)이며, 아버지는 인산군(仁山君)이인(李寅)이다.
[활동 사항]
이휴복(李休復)[1568~1624]은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외삼촌인 황암(篁巖)박제인(朴齋仁)에게 『소학(小學)』을 배웠다.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왜란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였다. 임진왜란 때 부모님이 왜적에게 살해당하자 외삼촌 박제인을 따라 진주 갈동(葛洞)으로 이거하여 부모의 상을 마쳤다. 27세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와 의령, 함안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곽재우(郭再祐) 장군 밑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여 1617년 절충장군으로 수군첨절제사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발생하자 관군 별장(別將)으로 안현(鞍峴)에서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그 공로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인원군(仁原君)에 봉하여졌다. 그해 음력 2월 평안도 순천 군수로 부임하였으나 갑작스런 병으로 6월 임지에서 생을 마쳤다. 왕명에 의해 고향 함안백이산(伯夷山)으로 반장(返葬)되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양졸정집(養拙亭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입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25년(인조 3) 인조가 「도천재 단서 죽백(道川齋丹書竹帛)」과 제문(祭文)을 내려 치제하고, 1631년(인조 9) 호조 판서로 추증하였다. 후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도천사(道川祠)와 함안면 파수리도계 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