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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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庶松 |
이칭/별칭 | 정서성(鄭瑞聖),정서성(鄭瑞成)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월 3일 - 정서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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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정서송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66년 11월 11일 - 정서송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정서송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랑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175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서송(鄭庶松)[1897~1966]은 1897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랑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175번지이다. 정서성(鄭瑞聖), 혹은 정서성(鄭瑞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군중이 화수리 경찰관주재소에 불을 지르자, 그곳에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쳤고, 차희식(車喜植)·장소진(張韶鎭)·장제덕(張濟德) 등과 함께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정서송은 이영쇠(李永釗)·이순모(李順模)·차인범(車仁範) 등과 몽둥이로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구타하였고, 군중과 함께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 판결을 받았다. 1966년 11월 1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