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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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月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철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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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간 | 연월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93㎢ |
가구수 | 106가구 |
인구[남,여] | 199명[남자 90명, 여자 109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는 월송(月松)·복녕(福寧)·연곡(蓮谷)·도수동(倒水洞)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나 도수동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명칭 유래]
연월리의 지명은 연곡 마을의 연(蓮)과 월송 마을의 월(月)을 각각 취한 것이다. 월송 마을은 월송쟁이라 불러졌는데, 마을이 반달 형국이고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복녕 마을은 옛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동복현의 치소(治所)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녕 마을의 뜻은 동복현의 영(靈)이 있던 곳이라 ‘복녕’이라 전해진다는 것과 마을 뒷산이 엎드린 용의 형세라 ‘복용(伏龍)’이라 한 것이 ‘복녕’으로 와전되었다는 두가지 전승이 있다. 연곡 마을은 마을의 뒷산이 연화도수(蓮花倒水) 형국이라 이를 취하여 연곡이라 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복현(同福縣) 현내면(縣內面),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동복현 읍내면(邑內面) 월송리(月松里)·교촌리(校村里)로 기록되어 있다. 1867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복현 읍내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동복군(同福郡) 읍내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읍내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동복군 읍내면 월송리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연곡리·월송리·복녕리·천변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연월리는 화순군 동복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있으며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동복천이 흐르며 북서쪽에 동복호가 있다.
월송 마을은 동복 향교가 자리 잡은 향교등을 북서쪽에 두고 마을이 반달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동복천 변으로 평야가 약간 펼쳐져 있는데 향교답을 경작하면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하천은 동복댐에서 흘러오는 물과 신율리·칠정리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쪽 내를 건너 복녕 마을과 나누어지며 동쪽 내를 건너서는 천변리와 나뉜다.
복녕 마을은 고려 시대 동복현의 치소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옛골 또는 복령(福令)이라고도 부르는데 남쪽으로는 노루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매봉과 성적골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 효자비가 있는 도덕굴을 거쳐 장구재를 지나면 읍애리로 통한다. 서북편으로 만경대와 만경호가 있어 경치가 좋으나 현재는 군사 시설 보호 지구로 되어 있다. 동복천을 경계로 월송 마을과 나누어져 있으며 마을의 방향은 동쪽을 항하고 있다.
연곡 마을은 동쪽으로 비금산[황새봉]이 있으며 그 너머로 신율리와 접한다. 남쪽으로는 향교들이 펼쳐져 있고 동남쪽에 천변리와 나누어지고 남서쪽으로는 월송 마을과 나누어진다.
[현황]
연월리는 2012년 현재 1구[월송 마을], 2구[복녕 마을], 3구[연곡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5.93㎢의 면적에 106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총 인구는 199명으로 남자 90명[1구 34명, 2구 22명, 3구 34명], 여자 109명[1구 50명, 2구 27명, 3구 32명]이다. 북쪽에는 보산리가 있고 동쪽으로 신율리·독상리가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읍애리와 한천리가 있고, 서쪽으로 이서면 서리가 경계로 인접하고 있다.
주산물과 주소득원은 벼이고 복녕 마을의 특산물은 한작약이며, 연곡 마을의 특산물은 고추와 한봉이다. 국도 22호선이 남쪽을 지나고 있고 동쪽으로 국도 15호선이 동복천을 따라 지난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동복 향교(同福鄕校), 고인돌, 만경대 터, 선돌, 여단 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