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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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艾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철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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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간 | 읍애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30㎢ |
가구수 | 39가구 |
인구[남,여] | 77명[남자 42명, 여자 65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는 읍애 마을 단일로 형성되어 있으나 세분하면 해가 비치는 쪽의 양지뜸[陽地洞]과 그늘이 지는 쪽의 음지뜸[陰地洞]으로 나눌 수 있다.
[명칭 유래]
읍애리의 지명은 숯실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숯실’을 한자로 표기하면 ‘애곡(艾谷)’이 된다. 읍내면의 읍(邑)자와 ‘애곡(艾谷)’의 애(艾)자를 각각 취하여 읍애리라 하였다. 동복군 외북면에 있는 숲실 마을을 외북면에 있는 애곡 마을이라 하여 외애리(外艾里)라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읍애 마을의 뜻은 원래 숲이 가려진 마을이라 숲실[쑥실과 같음]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애곡(艾谷)이라 표기하였다. 한편 마을 아래의 산 형태가 사람의 국부 형국으로 되어 있는데, 동편에는 여인에 해당하는 음음(陰淫)이 있고 서편에는 남자에 해당하는 잠두등(蠶頭嶝)이 있다. 이 때 남자를 청(靑), 여자를 단(丹)으로 불러 청단 마을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복현(同福縣) 현내면(縣內面),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동복현 읍내면(邑內面) 애곡촌(艾谷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1867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복현 읍내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동복군(同福郡) 읍내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읍내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동복군 읍내면 읍애리(邑艾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읍애리·둔동 일부]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읍애리는 동복면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에서 서쪽 방향의 산열과 북동쪽과 남서 방향의 산열이 교차하여 지나고 있다. 읍애리의 중앙에서 남동쪽으로 형성된 골짜기와 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읍애리의 중앙에서 북서쪽 방향의 양밭등들에서 시작한 들은 남동쪽으로 뻗어 한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끝자락에 가쟁이들이 동복천과 만난다. 읍애 마을은 동으로는 서락굴, 서쪽으로는 왕수등·농바위, 남쪽으로는 오리봉·가쟁이들, 북쪽으로는 질마재·장고재·삼밭굴이 있다.
[현황]
읍애리는 2012년 현재 5.30㎢의 면적에 39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총 인구는 77명으로 남자는 42명, 여자는 65명이다. 동쪽은 한천리, 서쪽은 무포리, 남쪽은 연둔리, 북쪽은 연월리를 경계로 하여 인접하여 있다. 읍애리의 북쪽으로 국도 22호선이 동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주산물은 벼이고 특산물은 고추이며 주소득원은 벼이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연자방아, 입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