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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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部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문안식 |
[정의]
신라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는 주군현(州郡縣) 제도를 근간으로 하였다. 그런데 신라의 지방 제도에는 군현의 명칭과 다른 소(所)·부곡(部曲)이 있었다. 소와 부곡은 천민의 집단 거주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와 부곡 등의 특수 천민 거주지는 고려 시대에도 존속하였고 조선 시대에 들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내용]
부곡(部曲)의 기원은 중국에서는 노예 혹은 노비와 같은 천한 신분의 인간을 가리켰던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 구획으로 쓰이게 되었다.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실[絲]·종이[紙]·도기(陶器)·먹 등을 만들기 위하여 두었던 특수 기관이었다. 여기에서 일하는 공장(工匠)은 죄인 또는 천민의 집단이었다.
일반적인 행정 구역과 향·소·부곡 등 특수 행정 구역을 구별하는 기준은 호구(戶口)의 많고 적음과 관련되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호구수가 적어 현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은 향(鄕)으로 편제하였다. 향(鄕)은 100호(戶)를 기준으로 하여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부족하여 현(縣)이 되기 어려운 곳에 설치되었다. 향은 주군현(州郡縣)에 비해 소규모의 행정 단위이며, 향촌주(鄕村主)가 지방 세력으로 있었다. 향과 부곡의 규모는 오늘날의 면(面) 정도의 넓이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화순의 사례]
화순 지역에는 와천소[현 화순군 북면 와천리]와 품평소[현 화순군 이양면 품평리] 및 율촌 부곡[현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율곡 마을]이 존재하였다. 와천소는 처음에는 기와를 굽다가 고려 중엽부터 조선 초기까지 차(茶)를 생산하는 다소(茶所)로 운영되었다. 품평소와 율촌 부곡은 관련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