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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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城山城戰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백용리|화순읍 일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문안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597년 - 오성산성 전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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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단체 | 최경운 |
[정의]
1597년 정유재란 때 화순 지역 의병장 최경운(崔慶雲)과 주민 500여 명이 오성산성에서 왜병 3,000여 명과 3일간 격전을 벌인 전투.
[개설]
최경운은 정유재란 때에 왜군들이 전라도 일대에서 잔학한 만행을 자행하자, 주민 및 가솔과 함께 오성산성에 올라 항전을 벌였다. 그는 진주성에서 전사한 최경회(崔慶會)[1532~1593]의 장형으로 당시 73세의 노구였다.
[경과]
화순 지역을 비롯한 전라도 일대는 정유재란 때에 극심한 피해를 당하였다. 호남은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의 침범을 피하였으나, 정유재란 때는 초토화되고 말았다. 화순 지역에 왜군이 침입한 것은 1597년 7월 말부터이며 왜군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과 보성 지역에서 침입해 왔다. 왜군은 동복 적벽 전투에서 패배하여 일시 순천 방향으로 물러났으나, 다시 동복을 거쳐 화순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결과]
화순현은 왜군의 침입으로 현(縣)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최경운은 왜군의 약탈과 참화를 피해 향민과 가솔 노비 등 500여 명과 함께 오성산성에 올라 항전을 벌였다. 최경운이 이끈 의병 부대가 주둔한 오성산성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가까운 요충지에 위치하여 전형적인 배후 산성 역할을 하였다.
최경운 의병 부대는 왜군 3,000여 명과 3일 밤낮 동안 처절한 혈전을 치렀으나, 오성산성이 함락되면서 항전을 벌이던 사람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현재 오성산성의 정상에는 최경운 전망 유허비(進士崔公慶雲戰亡遺墟碑)가 남아 있으며, 많은 기와와 토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