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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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雲住寺石造佛龕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천득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1월 30일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보물 제797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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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원소재지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출토 유물 소장처 | 운주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성격 | 불감 |
양식 | 석조 불감 |
크기(높이,길이,둘레) | 507㎝[높이]|363㎝[넓이] |
재질 | 화산 응회암 |
소유자 | 운주사 |
관리자 | 운주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경내 중심부에 위치한 석조 불감.
[개설]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곧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는 다양성과 무정제성(無整齊性)을 보아 건립 연대를 낮추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 신라 석탑들이 보여준 정형적인 감각은 사라지고 약간의 무계획적이고 거친 듯한 무작위(無作爲)의 기법이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은 운주사 경내의 남북으로 형성된 길쭉한 골짜기 가운데 평지에 자리한 석조 불감이다. 화순 지역은 위치상으로 동서 언덕과 평지에 있는 석불군의 정중앙에 자리하여 사역의 중심이라 할 만하다.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석불좌상 두 분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앉았다. 북쪽에 연화탑과 남쪽에 7층 석탑을 두어 각각 1탑 1금당 형식을 구현하려는 듯 금당 앞에 석탑을 배치하는 기본적인 가람 배치 형식을 따른 모습이다.
[건립 경위]
운주사의 불감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능성현 불우조(佛宇條)에 “운주사 천불산…(중략)… 또 석실이 있으니 두 석불이 서로 등지고 앉아 있다[雲住寺 千佛山…(중략)…又有石室 二石佛相背而坐]”고 언급한 기록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가 유독 불감 내의 상배불에 주목하였다는 것은, 상배불이 수많은 석불 석탑 가운데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 연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에 위치하며, 화순읍에서 도암면 소재지를 지나 전라남도 나주시 방향으로 3㎞ 가량 좌측에 있는 운주사 앞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은 두 석불 좌상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앉은 상태로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있다. 이 석조 불감은 운주사 경내 중심부에 위치한 것으로 목조 건축 형식을 띤 석조 불감이다.
불감의 평면은 방형으로 평평한 기단석 위에 4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짜 맞춘 단 위에 4매의 갑석을 얹었다. 갑석에는 13엽의 앙련이 음각되었다. 불감 안에는 1매의 판석을 세워 남북으로 공간을 양분하였다. 양쪽에 화염문을 새겨 광배의 역할을 한다. 벽체는 남북쪽 중앙만 문처럼 개방하고 그 외면은 판석을 돌려세워 막았다. 남·북쪽 좌우 각 2매석, 동·서쪽 좌우 2매석 모두 8매석이다.
문 상하 부분에 여닫이문을 부착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문둔테의 패인 홈이 좌우에 보인다. 지붕은 석재로 만들기 어려운 팔작지붕 형태이며 10매석으로 이루어졌다. 지붕 맨 위에는 굵은 용마루가 수평으로 설치되어졌다. 좌우 용마루 끝에 기와가 보이는데 노무라 다카부미[野村孝文]가 1940년 이전에 촬영한 사진과 동일한 모습이다.
지붕 일부와 불상 밑 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었는데 이것도 노무라 다카부미의 논문에 언급되어 있어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의 발간 이후인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시멘트 수리가 이루어졌음이 고증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이루어진 해체 보수 공사로 지붕과 벽체의 일부 석재들이 교체되었다. 불감은 높이 507㎝, 넓이 363㎝이다.
[현황]
지붕 일부가 새로운 석재로 보충되었고 불상 밑 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었다. 큰 구조물을 석재로 만들어서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하나 그 외에는 보존 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불상을 모시는 석조 불감으로 국내에서는 극히 드문 목조 건축 형식을 띠고 있다. 특히 목조 건축 형식을 모방한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벽을 사이에 두고 석불 좌상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어 극히 드문 예로 미술사적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