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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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雲住寺圓形多層石塔 |
이칭/별칭 | 원형 육층 석탑,연화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천득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1월 30일 -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보물 제79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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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운주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원소재지 | 운주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출토 유물 소장처 | 운주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 |
성격 | 탑 |
양식 | 원형 다층 석탑 |
재질 | 화산 응회암 |
크기(높이) | 5.58m |
소유자 | 운주사 |
관리자 | 운주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이형 석탑.
[개설]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곧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는 다양성과 무정제성(無整齊性)을 보아 건립 연대를 낮추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 신라 석탑들이 보여준 정형적인 감각은 사라지고 약간의 무계획적이고 거친 듯한 무작위(無作爲)의 기법이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은 운주사 석조 불감의 북쪽 바로 뒤에 위치한 원형 석탑이다. 기단부의 지대석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원형이다. 그러나 지대석은 어찌 보면 거북이 모양이며 기단 중대석만 10각인데 이 또한 원에 가깝다. 이 석탑의 구성 석재는 원형의 지대석이 1석이고 기단 중대석이 5매석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단 갑석과 탑신부의 탑신 및 옥개석은 모두 1석씩 조성되었다. 운주사에서 기단 갑석이 둥근 사례는 바루 탑과 함께 단 두 사례뿐이다.
[위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0-1]에 위치하며, 화순읍에서 도암면 소재지를 지나 전라남도 나주시 방향으로 3㎞가량 좌측에 있는 운주사 앞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기단부의 지대석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원형으로 보이나 지대석은 어찌 보면 거북이 모양이며 기단 중대석만은 10각이다. 갑석의 하면과 측면에는 피어나는 연꽃 모양의 앙연(仰蓮)을 얇게 조각하였다. 갑석 상면은 별다른 시설 없이 평평하다. 이 석탑의 구성은 원형의 지대석 위에 높직한 원형 괴임을 마련하고 5매의 석재로 10각의 기단 중대석을 세웠으며 그 위에 원형 갑석을 놓았다. 갑석 하면과 측면에는 피어나는 연꽃 모양의 앙연(仰蓮)을 얇게 조각하였다. 갑석 상면은 별다른 시설 없이 평평하다.
1층·2층·3층은 탑신을 3등분하여 2개의 수평선을 둘렀고, 4층·5층·6층은 탑신을 2등분하여 1개의 수평선이 그어졌다. 각층의 원형 옥개석은 상층부로 올라감에 따라 완만하게 체감되었다. 옥개석은 1층 옥개 하면에 2개의 선이 원형으로 얇게 파였고 2층 이상은 1개뿐이다. 마치 신라계 탑에서의 물끊기 홈 같은 모습이다. 6층 옥개석위에 7층 탑신이나 상륜부가 놓였던 흔적이나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단 갑석은 상면이 평평하고 측면이 호형을 이루는데 비하여 옥개석들은 정반대로 하면이 평평하고 측면이 호형이다. 이것은 원반형 석재의 모서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칠성 바위와 기능적 측면에서 구별되는 것으로 석탑 옥개석으로서의 기능적 측면에 충실하면서도 조형적 배려도 함께 고려한 시도로 이해된다. 옥개 하면의 물끊기 홈도 옥개 측면의 둥그런 호형과 함께 빗물의 처리에 대한 기능적 접근이다. 아울러 지대석 괴임과 갑석의 측면이나 지대석과 옥개석의 측면이 서로 대칭되어 전체적으로는 위아래가 균형이 잘 조화된 원반 모양의 석탑이 구현되었다. 다만 3층과 6층의 옥개석이 1층·2층과 4층·5층의 옥개석 두께보다 더 두꺼운 점은 아쉽지만 이는 석재의 재질이 갖는 특성상 채석과 치석의 한계에서 오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된다.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은 구성 형식이나 모습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형식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 이와 같은 탑의 형식이 발견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많이 나타난 이형 석탑 가운데에서도 가장 파격적이다. 바루 탑이나 실패 탑과 함께 새롭게 창출한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조영 기법을 보여주는 석탑이다.
원반이 중첩된 모양의 조형 사례로서는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불 좌상의 3층 원반 대좌가 유일하다. 통일 신라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의 대좌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아울러 일반적인 석탑 상륜의 보륜이 확대 적용되었을 가능성도 거론하지만 오히려 외형적인 모습에서 보다 가까운 것은 산치대탑의 산개형 상륜이 주목된다. 보륜의 측면이 호형으로 둥그렇거나 아랫면에 물끊기 단을 마련한 점 등에서 외형적으로 가장 유사하다.
이 탑 주위에는 원형의 탑신석과 옥개석이 여러 개가 놓여있어 이와 유사한 원형 석탑이 더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탑의 지대석 하부를 이룬 커다란 부재의 모습이 마치 거북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석조 불감의 앞쪽에 자리하여 1금당 1탑의 기능도 고려한 듯 보인다. 갑석에 연꽃이 표현되었기에 연화 탑이라고 한다. 높이 5.58m이다.
[현황]
전체적인 형태는 잘 남아 있으나 원석 자체가 깔끔하지 않은 탓에 표면 부분의 탈락이 많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히고 보존 상태는 우수한 편이다.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은 구성 형식이나 모습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원형 탑의 형식을 보여 준다. 기단부의 지대석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원형이다. 흔히 고려 말 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연계를 확증할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