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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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六忠臣磨崖碑 |
이칭/별칭 | 전주 이씨 육충지려(全州李氏六忠之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산 114-5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 정려 마애비.
[개설]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활동한 전주 이씨 가문 충신들의 정려를 바위에 새긴 것이다. 윗부분에 ‘전주 이씨 육충지려(全州李氏六忠之閭)’라고 가로로 새기고, 여섯 분의 충신 정려 내용을 세로로 차례로 새겨 놓았다. 육충신은 임진왜란에 창의하여 국왕을 호위하였던 이사종(李嗣宗)과 동생 이소종(李紹宗), 이사종의 아들 이정립(李廷立)과 병자호란에 창의하여 순절한 이사종의 아들 이정추(李廷樞), 이정기(李廷機), 이정근(李廷根) 삼형제이다.
[건립 경위]
임진왜란 때 국왕을 호위하고 병자호란 때 창의한 전주 이씨의 여섯 충신을 국가에서 정려를 하사하고 관직을 추증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근대에 전주 이씨 후손인 이득현(李得鉉)이 바위 면에 비문을 새겨 조상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마애비 끝에 ‘상지갑자오월일 명정(上之甲子五月 日 命旌)’의 연기가 있는데, 조선 후기의 갑자년은 1744년(영조 20), 1804년(순조 4), 1864년(고종 1) 등이 있는데, 특정 연대를 확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관직 추증에 대한 기록은 『승정원일기』 고종 4년(1867) 기사에서 확인되며, 문중에 전하는 이소종의 증직 교지(敎旨)에도 동치(同治) 6년(고종 4)으로 나와 관직 추증의 시기는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명정(命旌)에 대한 관찬(官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려된 시기는 알 수 없다. 집안에서 전하기는 영조조 명정, 고종조 증직으로 알려져 오고 있고, 기존 조사 자료에는 순종조 석각(石刻)으로 정리하고 있다.
[위치]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는 화순군 화순읍 화순군청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6.5㎞ 지점의 도로 변 암벽에 있다.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를 지나 화순군 동면 운농리 충의로 621에 위치한 인동 장씨 집[인동 장씨 교관공파 종중]과 바로 이웃한 야산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형태]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는 가로 188㎝, 높이 125㎝이고, 비명이 새겨진 부분 은 가로 149㎝, 높이 21㎝이다. 바위 면에 비석 형태로 새긴 마애비로 윗부분에 좌서 가로쓰기로 ‘전주 이씨 육충지려(全州李氏六忠之閭)’라 새기고, 그 아래에 8간으로 비문 구획을 정하고 그 안에 글을 새겼다. 처음에 ‘충신(忠臣)’, 마지막에 ‘상지갑자오월일 명정(上之甲子五月 日 命旌)’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6인의 증직과 인명을 음각으로 새겼다.
호남 유생 임장수(林長洙) 등이 상소하여 여섯 충신에게 증직과 정려 포장이 내렸으나 정문을 갖추지 못하다가 후손 이득현이 주관하여 마애비를 새겨서 오두적각(烏頭赤脚)의 정문을 대용하였고, 후손 이하근(李夏根)과 이진백(李鎭白) 등이 주도하여 「일문 육충 마애비기(一門六忠磨崖碑記)」를 받기도 하였다.
[금석문]
윗부분에 좌서 가로쓰기로 ‘전주이씨육충지려(全州李氏六忠之閭)’, 아랫부분에는 8간으로 구획하여 오른쪽부터 차례로 ‘충신(忠臣)’, ‘증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이사종(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李嗣宗’, ‘증가선대부 종정경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이소종(贈嘉善大夫 宗正卿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李昭宗)’,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이정립(贈童蒙敎官 朝奉大夫 李廷立)’,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이정추(贈童蒙敎官 朝奉大夫 李廷樞)’, ‘증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정기(贈通訓大夫司憲府持平 李廷機)’,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이정근(贈童蒙敎官 朝奉大夫 李廷根)’, ‘상지갑자오월일 명정(上之甲子五月 日 命旌)’이라 내려쓰기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현황]
윗부분 정려 명문 위에 4개의 판석을 얹어 보호 각을 설치한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밖으로 노출이 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국난에 창의한 향토인의 활동을 알 수 있으며, 마애비 형태의 충신 정려도 흔치 않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