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754
한자 河大鵬妻同福吳氏李得春妻晋州河氏雙烈旌閭
이칭/별칭 쌍열문 정려(雙烈門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 37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33년 -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 이서면 야사리 산 371-1로 이건
현 소재지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 371-1 지도보기
원소재지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도석리[학당리, 전도리]
성격 정려각
양식 목조와가 팔작지붕
관련 인물 하대중 처 오씨|이득춘 처 하씨
재질 목조와가|목재
크기(높이,너비,두께) 정면 2칸
소유자 진주 하씨 종중
관리자 진주 하씨 종중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정려.

[개설]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의 성균 진사 하대붕(河大鵬)[1533~1605]의 처 동복 오씨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가 되었다고 잘못 듣고 자결하였다. 종 목산(木山)도 ‘내 어찌 홀로 살리오?’ 하고 자결하였다. 충의위 이득춘(李得春)의 처 진주 하씨는 정랑 하대란(河大鸞)의 딸로 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리 앞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조선 후기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1759] 동복 열녀조에 처음 기록이 나온다.

[건립 경위]

조선 시대 정유재란하대붕의 처 동복 오씨이득춘의 처 진주 하씨가 자결로써 열행을 실천하자 학당리와 전도리에 각각 정려각을 건립했는데, 병암 하영청[1697~1771]이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로 옮겼고, 하정익(河廷益)이 중수기를 지었다. 1933년에 죽와(竹窩) 하응락(河應洛)이 현재 자리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로 옮겼다.

[위치]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화순군청 소재지에서 15㎞ 거리에 있다. 화순읍 수만리, 이서면 안심리를 지나 이서 면사무소 앞 적벽로를 따라 가다 600m 지점의 야사 제1교를 건너 200m 거리에 있는 규남 박물관 길 건너편 야산 입구에 있다.

[형태]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는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집이고 익공식(翼工式) 구조이다. 정려각 안에 2매의 현판에 각각 정려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단칸의 문이 있고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문 밖 동쪽에 안내문이 있다.

[금석문]

정려각 안에 정려 현판 2매가 있는데, 서쪽은 ‘열녀 성균 진사 하대붕 처 오씨지려(烈女成均進士河大鵬妻吳氏之閭)’, 동쪽은 ‘열녀 충의위 이득춘 처 하씨지려(烈女忠義衛李得春妻河氏之閭)’라고 씌어 있다.

[현황]

하대붕 처 동복 오씨·이득춘 처 진주 하씨 쌍열 정려는 2칸의 팔작지붕으로 안에는 정려 현판 2매가 있다. 앞에는 단칸의 문이 있고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바로 이웃하여 병암 하영청(河永淸)[1697~1771]의 병암처사 하선생 유허비(屛巖處士河先生遺墟碑)가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국난을 당하여 열행을 실천한 인물의 정려각으로 귀중한 정신 문화유산이며 화순 향토학 현장 자료로서 중요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