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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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星里利川徐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이문동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에 있는 이천 서씨 집성촌.
[명칭 유래]
이문동 마을은 도대문 안에 있는 마을이 되므로 이문동이라 했다.
[형성 및 변천]
서의수(徐義壽)[1550~1632]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의 이천 서씨 집성촌이다. 1570년(선조 3) 무렵 이천 서씨 18세손 서의립(徐義立)[1547~1631]과 서의수가 화순현 읍내면 소곡에서 이거하여 서의립은 성산촌으로, 서의수는 이문동으로 각각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서의립은 기아민을 구휼하였으며 선조 대에 수직으로 통정대부 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나은(羅隱) 서상룡(徐相龍)[1862~1944]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의 제자로, 한말 왜적의 침략을 받아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고 충청도 제천에서 유학자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제천의진(提川義陣)에 소속되어 종사(從事)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장기 항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원주를 거쳐 평안도 방면으로 북상했는데 압록강에 도달할 때까지 혈전을 하는가 하면 베이징의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등 독립 운동을 하다가 3년 만에 귀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는 한편 국립묘지로 유택을 이장하였다.
[자연환경]
이문동 마을은 서쪽으로는 성적봉의 지맥이 북쪽에서 뻗어와 있고 서쪽과 남쪽은 호동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성산 마을로 이어지는 긴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5가구 67명이 이천 서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부양정은 기우만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송은(松隱) 서병장(徐丙章)이 세운 정자이며, 구암 영당은 부양정을 중건할 때 송은의 후손인 서정재, 서정우가 1946년에 두 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성산사는 서견, 서강을 향사하며 1907년에 건립했다. 삼산정(三山亭)은 1946년에 서병준이 부친 서상룡의 의병 활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