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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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野沙里晉州河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진주 하씨 집성촌.
[명칭 유래]
야사 마을은 처음에 평사라 했고 이후 금사, 사촌, 사천이라 하다가 야사라 했다고 한다. ‘야사’는 들모실의 뜻이다.
[형성 및 변천]
1600년경 진주 하씨 사간공파 하윤구(河潤九)[1570~1646]가 영신에서 입향하여 금사정(錦沙亭)을 짓고 거주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입향조가 되었다. 하윤구는 호가 금사(錦沙)이며 하대표(河大豹)의 아들이다. 일찍이 한강 정구(鄭逑)와 월사 이정구(李廷龜)에게 배웠다. 1615년(광해군 7) 대륜시를 짓고 상소하여 정인홍(鄭仁弘)과 정조(鄭造), 윤인(尹認) 등의 죄악을 배척하고 문충공 이원익(李元翼)의 억울함을 전했으나 듣지 않았다. 1633년(인조 11) 문과에 올라 성균관 전적을 역임했다. 1626년 병자호란 시 정인명(鄭仁溟), 이기발(李起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격했으나 화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진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하우문(河禹文)의 호는 월담(月潭)이며 하윤구의 손자이자 하위보(河魏寶)의 아들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세상에서 추중하였고 성리역학 의례를 무불방통하고 만권의 책을 모아 늙을 때까지 스스로 즐겼다.
하백원(河百源)[1781~1844]의 호는 규남(圭南)이다. 사헌부의 장령·지평과 석성 현감을 역임했다. 조선 후기 때 과학문명의 꽃을 피워낸 과학자이자, 성리학자로, 위백규(魏伯珪)[전라남도 장흥], 신경준(申景濬)[전라북도 순창], 황윤석(黃胤錫)[전라북도 고창]과 더불어 호남 실학의 4걸(傑)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양수기를 발명했는가 하면 자명종과 방적기, 와륜을 제작했고 잔을 채우면 저절로 새 나가는 신기한 술잔인 계영배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그가 만든 「동국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보다 51년이나 앞선 것이며 청나라에서 들여온 세계 지도를 바탕으로 만국 전도와 천문도를 만들기도 했다. 하응도(河應渡)[1897~1949]와 하응철(河應喆)[1910~1984]은 각각 이서 면장을 역임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영신천 변을 따라 도석리와 인접한다. 천변을 곁에 두고 약간의 평야가 발달했고 멀리 적벽산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영신천 상류로 멀리 무등산이 있다. 냇물을 사이에 두고 갱변에 1984년 도석리 장터를 옮겨 왔다가 얼마 못가 폐장하였다. 남쪽으로는 영신천 너머로 별산에서 뻗어온 산등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 싸리재가 있다. 북쪽으로는 방아재에서 이어진 산등이 마을 뒤까지 이어져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1가구 54명이 진주 하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야사리에 2012년에 건립한 규남 하백원 선생 기념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