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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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景中 |
이칭/별칭 | 신민(信民),벽송재(碧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533년 - 조경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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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1년 - 조경중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67년 - 조경중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84년 - 조경중 사망 |
묘소|단소 | 지곡(智谷)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지곡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대표 관직 | 이조 정랑|군수 |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신민(信民), 호는 벽송재(碧松齋).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며, 아버지는 조세명(曺世明)이고, 어머니는 나주인(羅州人) 정도(鄭覩)의 딸이다. 진원인(珍原人) 박이경(朴而儆)의 딸 및 홍주인(洪州人) 송정수(宋庭秀)의 딸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조경중(曺景中)[1533~1584]은 화순 출신으로 1561년(명종 16)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7년(선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兵曹正郞)과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내고 삼군(三郡)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수령이 되었을 때 청렴 결백함으로 이름났고, 고을마다 그의 덕을 칭송하였다. 고경명(高敬命)이 큰 학자라고 일컬었고, 백광훈(白光勳), 임억령(林億齡), 중봉(重峰)이 상우(尙友)라고 일컬었다. 학문을 함에 『춘추(春秋)』로써 근본을 삼았다. 일찍이 유희춘(柳希春)과 더불어 사서(四書)를 고증(考證)하여 토(吐)를 달고 해석하였는데 미암 일기에 ‘덕량 군자(德量君子)’ 등의 말이 있다.
형제 네 사람이 한 이불을 덮고 기거하니 세상에서 ‘조씨 사봉(曺氏四鳳)’이라 칭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소영집(嘯詠集)』 2권이 전한다.
[묘소]
묘는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지곡(智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