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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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錘 |
이칭/별칭 | 보인(輔仁),만초(晩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백천 |
출생지 | 송추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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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송추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
성격 | 선행인 |
성별 | 남 |
본관 | 신평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보인(輔仁), 호는 만초(晩樵). 집의(執義)를 지낸 송자은(宋自殷)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송처묵(宋處黙)이고 아버지는 송재창(宋載昌)이다.
[활동 사항]
송추(宋錘)[?~?]는 자품(資稟)이 강정(剛正)하고 지기(志氣)가 강개하여 동학 농민 운동 직후 많은 백성이 무고하게 핍박과 도륙(屠戮)을 당할 때 적극적으로 상소하여 군민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또한 1906년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킬 때 병으로 달려가지 못함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했으며, 국권 회복 운동을 하던 중에 누설되어 왜적에 체포되어 가혹한 위협 속에서도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