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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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永瓚 |
이칭/별칭 | 사규(士圭),경묵재(敬黙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백천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사규(士圭), 호는 경묵재(敬黙齋).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증 참판(參判) 경직재(敬直齋) 문필진(文弼鎭)이다.
[활동 사항]
문영찬(文永瓚)[?~?]은 타고난 품성이 영오(穎悟)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 갖추었고 부귀영달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경학(經學)에 전념했다. 향교 문묘(文廟)의 집기와 제기가 부서지고 노후한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완비시켰다.
개와보(蓋瓦湺)를 쌓아서 수 만평의 전답의 수리 이용에 도움을 주었다. 1874년(고종 11) 대기근(大饑饉)에 수십 석의 양곡을 내어 지방민의 구휼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