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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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德老 |
이칭/별칭 | 공익(公益),회당(晦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출생 시기/일시 | 1692년 - 오덕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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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8년 - 오덕노 이인좌의 난 때 의병 활동 |
추모 시기/일시 | 1888년 - 오덕노 자헌대부 호조 판서에 제수, 정려 |
활동지 | 오덕노 활동지 - 전라남도 구례군 |
묘소 | 오덕노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용지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이인좌의 난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동복(同福). 자(字)는 공익(公益), 호(號)는 회당(晦堂).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오정열(吳廷說)이고 어머니는 오막소(吳邈蘇)의 딸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유삼(金有三)의 딸이다.
[활동 사항]
오덕노(吳德老)[1692~?]는 1728년(영조 4)에 발발한 이인좌의 난[무신난]에 창의하여 한양으로 가던 중 구례(求禮)에 이르렀으나 반란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묘소]
묘는 화순군 동복면 용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88년(고종 25)에 행적이 알려지면서 관찰사가 그 일을 조정에 상소하였다. 이에 고종은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하고, 정려(旌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