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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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竹齡 |
이칭/별칭 | 송재(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오죽령 의병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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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3년 6월 28일 - 오죽령 사망 |
묘소 | 오죽령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군 출신의 의병.
[개설]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화순군 동복에서 거의(擧義)한 의병이다.
[가계]
오죽령의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송재(松齋)이다.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고, 오억동(吳億東)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청 병사(忠淸兵使) 황진(黃進)과 협력하여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성이 함락되어 황진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묘소]
사후에 화순군 동복면(同福面) 읍애리(邑艾里)에서 의갑(衣甲)으로 초혼장(招魂葬)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오죽령의 행적이 전해져 1888년(고종 25)에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에 증직되었고, 정려(旌閭)를 명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