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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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宙勉 |
이칭/별칭 | 정여(正汝),규사(圭沙)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만호 |
출생 시기/일시 | 1856년 7월 26일 - 송주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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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0년 8월 15일 - 송주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12월 - 송주면 건국 훈장 국민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89년 3월 - 송주면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 이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5월 1일 - 순국 선열 규사 송주면 순절비 제막 |
출생지 | 송주면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 |
묘소 | 송주면 묘소 -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 |
묘소 | 순국 선열 규사송주면 순절비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 |
성격 | 애국 지사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애국 지사.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정여(正汝), 호는 규사(圭沙). 이조 판서(吏曹判書) 송일(宋馹)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송치만(宋致萬)이다.
[활동 사항]
송주면(宋宙勉)[1856~1910]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거쳐 1904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05년 10월 일제의 침략에 항의하여 중추원 의관직에서 사퇴하였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했다는 비보를 듣고서 ‘우리의 구강(舊疆)을 내놓아라.’라는 요지의 혈서를 통감부에 보냈다. 또 절명시(絶命詩) 5수(首)를 유서로 남긴 다음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고 했으나 집안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그날 밤 우물에 투신하여 54세를 일기로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 『규사 유고(圭沙遺稿)』가 있다. 1969년에 아들 송우회(宋羽會)가 편집·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이 묘비명을 지어 극찬하였다. 1977년 12월에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5월 1일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 사평면 사무소 건너편에 “순국 선열 규사 송주면 순절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