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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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正 |
이칭/별칭 | 이승의(李承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규무 |
[정의]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승정(李承正)[1871~1924]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남아가 세상에 태어나 국수(國讐)를 갚지 못하고 어찌 가히 집에 거(居)하여 도식 투생(徒食偸生)하리오”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서울 동대문 김태영(金泰榮) 집에 기숙하며 1914년 9~11월 김규석(金圭錫)·유병하(柳秉夏) 등에게 “국권 회복의 기회가 성숙되었으니 독립운동의 자금을 지원하라”고 권유하는 한편 전라남도 고흥의 송주환(宋柱煥)과 나주의 김익중(金益仲) 등 전라남도 각지의 유생들로부터 240여 원을 모금하였다.
이승정은 같은 해 12월 경찰에 체포되어 동대문 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경성 지방 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5년 1월 16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출옥한 그는“삼각산에 춘심(春心)은 끊어지고 동정호(洞庭湖)에 추수(秋水)는 차도다. 강토(疆土)가 비록 크다 이르나 한몸 부치기가 어렵도다”라는 시를 지어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