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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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住寺 |
이칭/별칭 | 운주사(運舟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대초리 22-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 송광사(松廣寺) 소속 사찰이다. 천불 천탑(千佛千塔)이 있다고 기록될 정도로 많은 탑과 불상이 있으며, 모양과 배치도 특이하여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찰의 위치 면에서도 전라남도 나주시·영암군·화순군·장흥군이 만나는 교통 요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 비하여 문헌 기록이 거의 없어서 창건(創建)과 창건 세력(創建勢力)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 운주사 창건 설화에 의하면,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따라 천불 천탑을 세워 비보 진압(裨補鎭壓)을 하여 국운(國運)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고자 하룻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도력(道力)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운주사 창건 주체도 신라 말 능주 호족 세력(豪族勢力)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 능주 지방에 이주해 온 외부 세력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 미륵 사상(彌勒思想)을 믿는 노비들이 미륵 공동체(彌勒共同體)를 건설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 도교 사원(道敎寺院)이라는 설 등이 있다.
운주사의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운주사(雲住寺)’로, 1737년에 작성된 「일봉암기(日封庵記)」와 1907년에 쓴 「개천사 중수 상량문(開天寺重修上樑文)」에는 ‘운주사(運舟寺)’로 기록되는 등 혼용되었다. 그러나 1984년 발굴 조사에서 ‘운주사(雲住寺)’라는 고려 시대 기와편이 발굴됨에 따라 ‘운주사(雲住寺)’가 원래 명칭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운주사는 발굴 조사에서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해무리굽 청자 조각이 출토되어 늦어도 11세기 초반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65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전하기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며 혹은 고려 승 혜명(惠明)이 무리 수 천으로 하여금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혜명은 광종(光宗) 때 은진(恩津) 관촉사(灌燭寺)의 석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혜명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창건 이후 운주사는 세 차례 중창이 있었는데, 첫 번째 중창은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이며, 2차 중창은 12세기, 3차 중창은 12세기 후반 내지 13세기 초반에 완성되었다. 그 상층(上層)에서 “홍치 8년(弘治八年)”이라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석탑과 불상 등이 조성된 것은 3차 중창 시기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상층에서 발굴된 명문 기와로 보아 운주사는 1495년(홍치 8, 성종 26)에 다시 중창되었다. 기와에 등장하는 시주자로는 홍씨(洪氏)·이씨(李氏)·전씨(田氏)·권씨(權氏)·임씨(林氏)·오씨(吳氏) 등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운주사가 있어 조선 전기까지는 사세(寺勢)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종 때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정유재란 때 폐사된 이후 사찰의 중심지가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서 도암면 대초리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초리 사지는 17세기 이후로 파악되는 2동의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설담자우(雪潭自優)의 「운주동 불탑 수리 후 중건약사전 권선문(雲住洞佛塔修理後重建藥師殿勸善文)」에 의하면 19세기 초반 훼손된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중수하고 새로이 약사전을 중건하였고 이를 약사사(藥師寺)로 기록하고 있다. 한동안 다시 폐사되었던지 1921년에 간행된 『도암 면지(道岩面誌)』에 의하면, 1918년에 전 군수(前郡守) 박윤동(朴潤東) 등 16명이 시주하여 재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2년~1978년 비구니 승려의 중건으로 대웅전과 요사를 건립하였고, 근래에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면서 대대적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수많은 전각을 건립하고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
[활동 사항]
운주사의 정기 법회는 매월 초하루와 18일에 지장제 법회가 있다. 절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은 없으나 매년 5월에 화순군에서 운주사를 중심으로 한 화순 운주 축제를 열고 있다.
신도들은 지장회와 거사림회라는 2개의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임에서는 사찰의 불사와 법회 지원 봉사를 하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2013년 현재 운주사에 거주하는 승려는 3명이고 신도 수는 1,000여 명이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지장전·미륵전·산신각·보제루·종루·운주 선원·일주문·사천왕문·원융당·지혜당·공양간 등 16동의 전각이 산재해 있고 계곡 깊숙한 곳에 암자 목우암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 독존상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의 외벽에는 처참한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관련 문화재]
운주사에는 석탑 21기와 불상 97구 및 칠성 바위 마애불 등 수많은 유물이 있으며, 사찰 일원은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3년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화순 운주사 구층 석탑[보물 제796호],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와형 석조 여래불[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3호], 화순 운주사 광배 석불 좌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4호], 화순 운주사 마애 여래 좌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5호], 화순 운주사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6호] 화순 운주사 쌍교차문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7호],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 앞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8호], 화순 운주사 거북 바위 교차문 칠층 석탑,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0호 화순 운주사 대웅전 앞 다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9호], 화순 운주사 칠성 바위 앞 칠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1호], 화순 운주사 발형 다층 석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2호], 화순 운주사 거북 바위 오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56호], 화순 운주사 수직문 칠층 석탑[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57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