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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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福鄕校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연월리 84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윤희면 |
건립 시기/일시 | 1445년 - 동복향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에 건립[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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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594년 - 동복향교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로 이건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655년 - 동복향교 폐교 |
복설 시기/일시 | 1664년 - 동복향교 복교 |
이전 시기/일시 | 1701년 - 동복향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생가몰로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756년 - 동복향교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9년 - 동복향교 대성전과 내삼문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2월 25일 - 동복향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동복향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9년 - 동복향교 동재와 서재 복원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동복향교 외삼문 복원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8년 - 동복향교 대성전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9년 - 동복향교 명륜당 복원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0년 - 동복향교 대성전 단청 |
원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연월리 846] |
이건 | 동복향교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 |
현 소재지 | 동복향교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연월리 846] |
성격 | 향교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 |
측면 칸수 | 2칸[대성전] |
소유자 | 전라남도 향교 재단 |
관리자 | 동복향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위치]
동복향교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에 위치한다. 월송 마을 뒤편 높은 언덕[속칭 향교산] 위에 정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화순읍에서 약 24㎞ 거리이다.
[변천]
동복향교는 조선 시대 동복현에서 공자 등의 선현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 기관이다. 조선 시대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동복현이 화순현과 합쳐졌다가 1408년(태종 16)에 동복현과 화순현이 분리되고, 이에 따라 동복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동복현에 향교가 설립된 것은 현감 파견 이후로 1445년(세종 27)에 현재 위치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이후의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1543년(중종 38)에 중수되고, 1586년(선조 19)에도 중수되었다. 1594년에 지금의 화순군 화순읍 교리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사실과 이유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는 실정이다. 1655년(효종 6)에 동복 관아에 불이 나서 객사에 모셔진 전패가 소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동복현은 폐현되어 화순현과 합쳐졌고, 동복향교도 위판이 땅에 묻히고 폐교되었다. 그 후 10년 뒤인 1664년에 복현되고 동복향교도 복교되었다. 이어 1701년(숙종 40)에 현의 남쪽 독상리 생가몰로 이건되었다. 이때의 이건과 관련해서 “지금 동복향교의 위치가 앞은 대천으로 수재의 우려가 있고 뒤는 산록으로 습기가 차는 곤란함을 겪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양반들이 풍수설에 현혹되어 뚜렷한 이유 없이 향교 이건을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는데 감사가 고을을 순행하다가 직접 본 결과 위치가 나빠서 그러한 것이니 이건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고, 이에 조정에서는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동복향교는 화순읍 교리에서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동복향교는 이건 55년 뒤인 1756년(영조 32)에 독상리에서 다시 처음의 위치인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의 구릉 위로 이건되었다. 이때의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무튼 창건 이래 한 번의 폐교와 세 번의 이건을 거듭하였다. 동복향교의 이후 연혁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고, 다른 향교들과 마찬가지로 중수와 보수, 중건을 거듭하면서 학교 기관으로 유지되어 왔다.
1903년에 화순 군수 김기중의 주선으로 중수되었고, 1935년에는 중건되었다. 당시 향교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사마재, 고고재(顧顧齋), 고직사 등이 있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의 와중에 전소되었고, 1959년에 정부와 동복 지역 유림들의 노력으로 대성전과 내삼문만 복원되어 예전의 향교 모습을 겨우 회복하였다. 이후 1988년 동재인 경모재와 서재인 양사재가 복원되었고, 199l년 화장실 신축, 1996년 내삼문 계단, 1997년 담장 및 외삼문 계단, 1998년 대성전 보수, 1999년 명륜당 복원을 하여 겨우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형태]
언덕 위에 올라서면 계단 위에 외삼문이 자리 잡고 있다. 담장이 둘러쳐 있는 안으로 들어서면 명륜당이 나온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 동쪽의 경모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서쪽의 양사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삼문은 대성전의 정문으로 정3칸 솟을대문이다. 막돌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우고 납도리를 걸은 3량 구조로 중앙 칸은 판장문이며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내삼문 안의 대성전은 막돌 담장으로 둘러진 약 495㎡의 장방형 대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대성전은 전퇴를 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전면으로 약 5O㎝ 높이의 막돌 석축 위에 기단을 형성하였으며 기단 상부는 진흙다짐으로 마감하였다.
[현황]
동복향교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있으며,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는 전라남도 향교 재단이고 관리는 동복 유도회 지부가 맡고 있다.
6·25 전쟁으로 소실됐던 관계로 전적과 현판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대성전 앞에 7개의 비석이 도열되어 있는데, 향교의 중수와 중건에 공을 들인 현감의 흥학비, 향교 교임들의 공적비, 모성비 등이다.
[의의와 평가]
동복향교의 이건 과정을 통하여 조선 시대 향교가 지방 유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학교 기관이고 향촌 기구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향교의 유지와 이건에 풍수설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