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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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口碑傳承 |
영어공식명칭 | Oral Heritage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오랜 시간 기층의 기억과 입말을 통하여서 전하여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체.
[개설]
구비 전승은 인간이 시간을 통하여서 축적한 경험적 산물을 문자가 아닌 입말을 통하여서 전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따라서 구비 전승물은 범위가 매우 넓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일반적인 대화에서부터 속담과 격언, 옛이야기, 일화와 경험담, 노래 등이 구비 전승물에 해당한다. 구비 전승은 기억과 입말을 통하여서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전하기에 상층 지배 계급의 지식 전승 체계라기보다는 기층민의 지식 전승 체계라 할 수 있다.
[구비 전승물로서 설화와 민요]
구비 전승물의 대표적인 하위 장르가 설화와 민요이다. 설화는 서사체 양식으로 구성된 구비 전승물이며, 민요는 노래의 형식을 빌려 기층의 정서와 감정을 전달하는 구비 전승물이다. 설화와 민요는 구성 양식면에서 다르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상호 교호하는 양상을 보인다. 설화가 민요의 한 단락을 구성하기도 하고, 민요의 정서적 측면이 설화에 영향을 주어서 다양한 각편(各篇) 파생을 추동하기도 한다.
설화와 민요는 다른 구비 전승물에 비하여서 지역적 특색을 강하게 지닌다. 그래서 지역의 기층 문화를 탐색하는 데 가장 먼저 조사·분석되는 대상이 설화와 민요이다. 한국은 근대를 거치면서 일제 식민 지배와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하였고, 현대에 와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정보통신의 발달을 경험하였다. 설화와 민요는 일제 식민 지배와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사회적 억압으로 전승 단절 및 변형·왜곡을 겪게 되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실질적인 필요성을 상실하여 망각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게 소멸하여 가는 설화와 민요를 강제적으로 고착시켜서 화석화시킬 수 없다. 구비 전승물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계속적인 단절·변화·굴절되는 운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익산 지역의 구비 전승물과 전승 현황]
익산 지역의 설화와 민요도 시대적 변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과거 익산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던 설화와 민요는 이제 몇몇 촌로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과거에 조사된 설화와 민요는 『익산군지』, 『익산시사』, 『한국구비문학대계』 등 민속지에 기록되어 현재에 전하여지고 있다. 익산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수록되는 구비 전승물인 설화와 민요도 과거에 채록된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으며, 현대의 구비 전승물을 조사·수집하여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5-13 전라북도 익산시 편을 참고하였다.
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으로 분류된다. 신화는 신성성을 지닌 주인공이 세계와 대립하여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전설은 일반 사람과 달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세계와 대립하다가 실패한 내용이다. 전설의 특징은 역사성, 사실성, 비극성이다. 민담은 평범한 주인공이 세계와 대립하여 승리한 내용이다. 민담은 유희성, 허구성, 희극성을 특징으로 한다. 보통 지역에서 전승되는 설화를 살펴보면, 전설과 민담이 주를 이룬다. 반면 익산은 몇몇 설화에서 신화의 잔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花公主) 이야기의 실제 배경이 익산이었고, 이를 증거하는 미륵사지(彌勒寺址)가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마한(馬韓) 신화의 구조를 지닌 특이한 서사물이다. 서동과 선화공주 관련 구비 설화가 모두 신화라고 단정할 수 없다. 신화성을 부분적으로 탈각한 전설의 성격을 띤 각편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익산의 전설 중에서 눈에 띠는 각편은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인물 전설이다. 소세양은 조선 시대 인물로서 중종(中宗)[1488~1544]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인종(仁宗)[1515~1545] 때 대윤(大尹) 일파의 탄핵을 받아서 익산에 은거하여 만년을 보냈다. 이러한 인연으로 소세양에 대한 인물 전설이 익산 지역에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외에도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이며 마한을 건국한 기준(箕準)에 대한 인물 전설, 「연화마을 지명 유래」, 「오금산의 유래」, 「승댕이 마을 유래」 등 지명 관련 전설도 눈에 띈다.
민요는 기능에 따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 정치요로 분류된다. 노동요는 기층민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며, 현실적인 기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노동요는 민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익산의 노동요는 벼농사와 관련된 노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베는소리-벼베는산야」, 「모심는소리」, 「장원질소리-질꼬냉이」 등은 벼농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노래이며, 「지경소리」는 땅을 다지면서 부르는 노동요이자 의식요의 성격까지 지닌 노래이다. 의식요는 기층민이 의식을 행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익산 민요 중 의식요에 해당하는 것은 「상여노래」, 「성주풀이」 등이 있다. 유희요는 놀이를 행하면서, 놀이의 진행을 돕기 위하여 부르는 민요이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화투노래」가 있다. 이외에도 타령조 민요와 근대 통속민요가 현재 익산 지역에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민요는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실질적인 기능성을 상실한 대표적인 구비 전승물이다. 실질적인 기능성을 상실한 민요는 현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서 전국적으로 유포된 근대의 타령조 노래와 통속민요가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