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807 |
---|---|
한자 | 鄭東植 |
영어공식명칭 | Jung Dongsik |
이칭/별칭 | 경필(敬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50년 3월 4일 - 정동식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876년 - 정동식 무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8월 13일 - 정동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정동식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2000년 4월 11일 - 정동식 백산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묘소 | 백산서원 - 전라북도 익산시 동서로3길 15[모현동2가 85-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연일(延日) |
대표 경력 | 훈련원첨정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동식(鄭東植)[1850~1910]의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는 경필(敬必)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정제호(鄭濟鎬)이다. 아들은 정희면(鄭煕冕)이다.
[활동 사항]
정동식은 1850년 3월 4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876년(고종 13) 무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친군별영초관 겸 선전관(親軍別營哨官兼宣傳官)에 임명되었다가 충무위좌랑(忠武衛左郎)으로 옮겼다. 이후 훈련원 주부 및 수주부(首主簿)로 승진하였다가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이 되었다.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발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였다.
정동식은 1910년 8월 13일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원수의 땅에서 생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포고문과 토적문(討賊文),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남기는 글을 써 놓고 집을 나서서 전주부로 향하였다. 전주부에 가서는 관찰사 이두황(李斗璜)에게 토역문(討逆文)을 보이고 나라 잃은 비통한 심정을 토로한 뒤 공북루(拱北樓)로 올라가 의관을 바로 한 다음 북쪽을 향하여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정동식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정동식은 2000년 4월 11일 익산시 모현동2가 85-7에 있는 백산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