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91 |
---|---|
한자 | 鷲峰峙戰鬪 |
영어음역 | Chwibongchi Jeontu |
영어의미역 | Chwibongchi Batt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완회 |
발생|시작 장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 |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홍원 |
[정의]
임진왜란 때 청풍 지역의 취봉치(鷲峰峙)에서 벌어졌던 전투.
[개설]
1592년 4월에 왜군이 수만의 병력으로 침공해 오자 오랜 승평(昇平) 세월에 잠겨 있던 조선의 관군이 무너져 버렸다. 이에 향촌 사회에서 성장해 온 재지 사족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섰다. 의병들은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도 지리에 밝고 향토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여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에 큰 변수가 되었다.
[경과]
제천에서는 홍원(洪遠)이 의병을 일으켰다. 홍원은 진천 현감을 역임한 홍인지(洪仁祉)의 아들로 사마시에 입격한 지식인이었다. 홍원은 가솔과 농민들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섰다. 처음에 충주의 화개산(華盖山)[현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쳐 왜군의 진로를 일시 가로막았다. 그러나 얼마 후 청풍의 취봉치(鷲峰峙)[현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에 있는 고개]에서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병사들이 흩어지고 홍원은 전사하고 말았다.
부친인 홍원을 좇아 종군했던 아들 홍여수(洪汝守)도 부친을 따라 순절하였다. 이 소식이 제천의 고향집에 알려지자 홍원의 처 한양 조씨와 며느리 전의 이씨도 같은 날 자결하였다. 사람들은 홍원과 그 가족을 충신에 효자와 열녀가 한꺼번에 난 경우라고 하여 칭송하며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