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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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衡平運動 |
영어음역 | Hyeongpyeong Undong |
영어의미역 | Equalization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백정들의 사회 운동.
[개설]
형평 운동은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창립되어 1935년까지 유지된 형평사를 중심으로 천민으로 박해를 받아오던 백정들이 인권 존중과 평등 대우를 주장한 사회 운동이다. 제천에서의 형평 운동은 1923년 형평사 제천분사가 결성된 이래 처음에는 강한 저항에 부딪쳤으나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충청북도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내용]
형평사 제천분사는 1923년 9월 초에 결성되었다. 형평 운동이 경상남도 진주에서 처음 시작된 지 4개월여 만이었고, 충청북도에서는 청주에 이어 두 번째로 결성될 만큼 선진적이었다. 당시 진주와 충청북도 내 각 군의 형평사원들이 제천으로 몰려와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형평사 제천분사의 창립 축하식에 몰려와서 행사장을 파괴하고 형평사원들을 구타하여 행사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백정들의 평등권 요구를 고깝게 여긴 이들은 형평사원들에게 강제로 패랭이를 씌우고 끌고 다니면서 갖은 모욕을 가하였다. 이는 형평사 운동에 대한 지역 사회의 완고한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평 운동을 거치면서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차 변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2월 13일 백정의 딸인 조풍교가 제천공립보통학교 5학년 재학 중에 병사하였는데, 이때 5학년생 전원과 각 학년 대표가 묘지까지 함께 가서 조문하고 축문을 지어 낭독한 일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를 통해 사회적 분위기가 형평사 제천분사 결성 시점과는 상당히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천의 형평사 분사도 점차 체제를 정비하여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1928년 7월에 형평사 제천분사가 임시 총회를 열고 사장제(社長制)를 위원제(委員制)로 변경하고, 중앙 집행 위원에 조순석(趙順石)·길오성(吉五成)·강두산(姜頭山)·조순룡(趙順龍)·이팔봉(李八奉)·길용근(吉用根)·이수창(李壽昌)·이칠봉(李七奉), 위원장에 조순룡, 후보에 조순석, 서무부에 강두산, 경리부에 길오성, 조사선전부에 길용근, 서기에 이수창 등을 선임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천 지역에서의 형평 운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분제가 철폐된 평등한 근대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 운동으로 가치를 가진다. 또한 형평사 결성과 활동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신분제 사회가 실질적으로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