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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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郡治安維持委員會 |
영어음역 | Jecheongun Chiannyujiwiwonhoe |
영어의미역 | Jecheon-gun Security-Preservation Committ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광복 직후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설립된 치안 유지를 위한 자치 단체.
[개설]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는 해방 직후에 한필수(韓弼洙)를 중심으로 제천에서 결성되어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활동하는 한편, 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설립 목적]
조선총독부 권력이 붕괴되고 미군이 주둔할 때까지의 권력 공백기에 건국준비위원회가 실질적인 정부 역할을 수행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과 동시에 총독부로부터 행정권을 이양 받고 일본인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 방지, 치안 유지, 식량 파동 방지 등을 주요 업무로 하여 지역 및 직장별로 160여 개에 이르는 건국 치안대를 두었다. 제천에서는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변천]
1945년 8월 16일 제천군청에서 유지들을 중심으로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지역의 명망가인 한필수가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산하에 치안대, 청년대, 선전대 등의 조직을 갖추었다. 치안대는 과거에 경방단(警防團)이라 불리던 소방 조직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대장은 김성열이 맡았다. 청년대는 주로 징병에 나갔다가 귀환한 이들이 중심이 되었고, 해방 당시 제천에 거주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활동을 개시하였다.
청년대의 제1대 대장은 베이징대학 출신으로서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나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던 김기영(金基榮)이 맡았다. 김기영은 김성열의 아들이었다. 선전대는 주로 일본이나 서울에 유학 갔던 젊은 지식인층으로 구성되었다. 와세다대학 이공학부를 나온 홍민희(洪敏憙)를 필두로 박홍구(朴泓九)·이상필(李相弼)·이창호·홍선식·심태용·안영익·김상기 등이 중요 인물이었는데 대개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에서는 시민들에게 일본인들의 이권 챙기기에 부화하지 말 것을 호소하였다. 거리에 나가서 산을 가만히 매매해 주거나 일본 은행권을 바꾸어 주는 일을 삼갈 것을 방송하였다. 이를 들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고 여겼다. 이에 일본인 경찰서장은 다시 칼을 차고 경찰서에 나왔고, 제천역과 영월발전소를 수비하던 일본군 경비대가 시내에 집결하는 등 극도의 긴장 상태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 상태는 치안유지위원회의 노력으로 진정되었다. 일본인 경찰로부터 무기를 인수하고 무장 해제 시키거나 일본인들을 한군데 수용하여 한국인의 사적인 보복을 미리 막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하였다.
주민에 대한 계몽 활동도 전개했으나 조직 자체가 급조한 것이었고, 다양한 이념적 성향의 조직이 동시에 혼재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활동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는 일본의 패망 이후 미군정이 본격화하기 이전의 권력 공백기에 제천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