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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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公沂扈聖功臣敎書-肖像 |
영어음역 | Hangyegun Yi Gonggi Hoseonggongsin Gyoseo Mit Chosang |
영어의미역 | Royal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and Portrait of Yi Gong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정리 47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9월 11일 -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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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 |
성격 | 교서|초상 |
소유자 | 제천시 |
관리자 | 제천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기(李公沂)의 공신 교서와 초상화.
[개설]
이공기는 선조 연간[1567~1608]에 어의를 지낸 인물로서, 특히 침구(針灸)에 능하여 임금을 비롯하여 대관(大官)의 치료에 공이 많았다. 본교서는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에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節策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임진왜란을 평정하는 데 큰 공훈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려진 훈호는 호성(扈聖)·선무(宣武) 두 가지로 나뉘는데, 임진왜란 당시 서울에서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한 사람을 호성공신으로, 왜병을 정벌한 장수들과 원병과 양곡 요청을 위해 명에 왕래한 사신을 선무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도화리 한계군 영당에 봉안되어 있다가 교서와 함께 제천시에 기증되었다.
[형태 및 구성]
교서는 비단에 가로 19㎝, 세로 39㎝의 두꺼운 선지를 포개 붙여 만든 것으로 두루마리 형태이다. 초상(肖像)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를 취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특징]
교서는 전체 길이 195㎝로서, 당시 선조가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봉한 1등 2명, 2등 31명, 3등 53명 등 모두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승지(承旨)였던 신지제(申之悌)가 글을 짓고 명필 한호(韓濩)가 썼다고 전한다. 내용을 보면 이공기의 공적 사례, 공신에 대한 포상과 특전, 공신의 명단, 사실 증명 등을 차례로 적고 있는데, 앞부분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비단에 두꺼운 선지를 포개 붙여 만든 것으로 두루마리 형태이다. 초상(肖像)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를 취하고 있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초상은 흑색으로만 채색되어 있고, 안색은 옅은 살색을 기조로 하여 외곽선 및 이목구비를 안색보다 약간 짙은 색 선으로 표현하였다. 단령은 깃이 파여 있지 않고, 가슴에는 운안흉배(雲雁胸背)와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있다. 단령의 트임 사이로는 붉은 첩리와 녹색 안감을 표현하였고, 양옆으로 뻗어 있는 의자의 손잡이 등 17세기 전반기의 초상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604년(선조 37)에 호성(扈聖), 선무(宣武), 청난(淸難) 등 3공신의 공신상(功臣像)을 제작하라는 왕명에 따라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교서(敎書)는 공신교서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초상은 전체적인 형식이나 표현 기법에 있어서 17세기 전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어 조선 후기의 초상화 제작, 양식,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09년 9월 1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