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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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中田里古家 |
영어음역 | Jecheon Jungjeon-ri Goga |
영어의미역 | Old House in Jungjeon-ri, Jeche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4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형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5월 1일 - 제천 중전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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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천 중전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이전 시기/일시 | 1985년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45 |
원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140 |
성격 | 가옥 |
양식 | 민도리집 |
소유자 | 진주 유씨 단양백공파 종중 |
관리자 | 유병관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위치]
금성면사무소에서 청풍 방면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 약 2㎞를 달리면 고교천이 나온다. 고교천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여 약 2㎞를 달리면 우측으로 중전리 마을이 있다. 계속해서 약 600m를 더 가면 도로변 우측으로 50여m 들어가서 제천 중전리 고가가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제천 중전리 고가는 원래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140번지[큰말]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가옥이 수몰 지구로 편입되면서 1985년 경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제천 중전리 고가의 정확한 초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에 진주 유씨 단양백공파 종중에서 파조(派祖)인 유승미(柳升湄)의 재실로 사용하기 위하여 구입하였다고 한다.
안채에 ‘영모재(永慕齋)’라는 현판이 있고, 「영모재중건기(永慕齋重建記)」가 걸려 있다. 이건 전에는 유생용(柳生龍)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제천 중전리 고가는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사랑채 북동쪽으로 一자형 행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로 방앗간채와 헛간채 등의 부속 채가 배치되어 있다. 안채의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건넌방과 툇마루를, 우측으로는 ㄱ자로 꺾으면서 2칸 크기의 안방과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사랑채는 대문간 우측으로 아랫방, 윗방, 사랑마루로 구성하였다. 윗방과 사랑마루 사이는 4개의 장지문을 달아 물건을 드나들게 하였으며, 3면이 개방된 사랑마루를 끝으로 우측으로 꺾어지면서 안채로 들어가는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하였다. 사랑채의 사랑마루는 원래 사랑방이었으며, 지붕은 현재는 기와지붕이나 원래는 초가지붕이었다고 한다. 또한 안채 부엌과 사랑채 사랑방 사이에 협문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행랑채는 대문간 좌측으로 외양간을 두었고 여기서 꺾어 한데 부엌 칸, 아랫방, 윗방과 툇마루로 구성하였다. 대문간에는 내외벽을 설치하여 대문을 통해 안채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고려하였다. 건물 구조는 안채, 사랑채 모두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방형의 기둥을 세웠다. 가구 형식은 안채와 사랑채 모두 3량가의 민도리집으로 구성하였으며, 지붕도 모두 우진각 지붕으로 하였다.
[현황]
가옥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전면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경관 및 조망 등의 입지 조건이 많이 훼손되었다. 주위 담장은 돌로 잘 쌓아 놓았으며, 담장을 따라 은행나무, 과목, 각종 꽃들을 심어 놓았다.
[의의와 평가]
부재들의 상태 및 가구 기법, 공간 구성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이 지역에서의 부농 계층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