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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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淸風寒碧樓 |
영어음역 | Jecheon Cheongpung Hanbyeongnu |
영어의미역 | Hanbyeongnu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형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1월 8일 -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제52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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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1317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406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34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70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2년 8월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
원소재지 | 충청북도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 |
성격 | 누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제천시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고려 후기 누각.
[개설]
제천시 청풍면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삼국 시대부터 수운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하여 1317년(충숙왕 4)에는 군으로 승격되고 1659년(현종 즉위년)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역사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옛 청풍부(淸風府)의 읍치는 청풍면 읍리였으나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겨 버렸다. 당시 청풍부에는 객사(客舍) 55칸, 아사(衙舍) 37칸과 기타의 부속 채가 있었으며, 아사 37칸 중에는 치소인 관수당(觀水堂)을 비롯하여 한벽루, 응청각, 명월정, 팔영루가 있었고 객관의 서헌(西軒)인 매월헌 등이 있었다. 제천 청풍 한벽루는 관수당 동편 남한강변 벼랑 위에 객사와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위치]
제천시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시내 초입에 신당교 앞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천역 방면으로 국도 5호선을 따라 450m쯤 가면 길 오른쪽에 중앙선 철교 밑을 지나 청풍·한수로 가는 지방도 597호선이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21㎞쯤 가서 청풍대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제천 청풍 한벽루는 1317년(충숙왕 4)에 승려 청공이 왕사가 되어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면서 이를 기념하여 객사 동편 한강 변 벼랑 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1406년(태종 6)에 군수 정수흥이 중수하였으며, 이때 하륜(河崙)[1347~1416]이 지은 기문이 남아 있다. 1634년(인조 12)에 군수 권경기(權儆己)가 개창하였는데, 당시 이준(李埈)이 쓴 중수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건축은 양식적으로 이때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870년(고종 7)에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였으며, 1900년에는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보수하였다. 1972년 8월 대홍수로 완전 도괴되었던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제천 청풍 한벽루는 제원군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1983년에 이전 조성하여 현재는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다.
[형태]
제천 청풍 한벽루는 본루에 익루가 연결되어 있는 1출목 이익공 팔작지붕 집이다. 본루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누각으로 되어 있으며, 측면에 진입 회랑인 3칸의 익랑을 두었다. 가구 형식은 5량 구조인데, 통상적인 기수가 아닌 우수의 정면 칸수로 형성된 특색이 있다.
이것은 주변의 경관과 건물의 배치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으나 한벽루만 남아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기 때문에 해석이 곤란하다. 그러나 건물이 우수 칸으로 설정된 예가 많지는 않으나 희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면 건물의 규모와 주변 환경에 따라 우수 칸이 설정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되는 건물로 볼 수 있다.
본루의 건물 구조를 살펴보면, 2단의 자연석 기단 위에 평평한 반석의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누하주와 누상주를 분리하여 민흘림 원기둥을 세웠다. 누마루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4면에 계자 난간을 둘렀다. 누상부는 고주 없이 통칸으로 형성되었으나 누하부는 측면 주열에 상관없이 중앙 열에 마루의 장귀틀을 받치는 기둥이 추가되었다.
공포 형식은 1출목 2익공으로 짜여졌는데, 연화를 얹은 앙서형 살미와 쇠서형 살미에 보머리에는 봉두(鳳頭)를 조각하였다. 기둥 사이 창방 위에는 파련각하여 모양을 낸 화반을 놓아 주심장여와 도리를 받치고 있다. 주심포 양식과 익공 양식이 혼합된 이러한 공포 형식은 조선 시대 관아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천정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으나, 외기 부분과 우측의 중앙부는 우물반자로 하였다. 외기 부분은 당연히 우물반자로 되는 것이나 측면 중앙부에 외기반자보다 단을 낮춰 우물반자로 한 것은 특이하다. 이는 특별한 행사나 연회 시에 이 부분이 상석으로 취급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본루의 좌측으로 이어진 익루는 무출목 초익공 양식의 맞배지붕 집이다. 사각 석주위로 팔각기둥이 누상층까지 연결되어 있고, 좌측면 디딤돌과 계단을 통해 익루로 진입하며 내부에 층단이 있어 본루로 진입할 수 있게 하였다. 전·후면에 창방이 가로질러 있고 그 위로 쇠서형 살미를 얹었으며, 본루와 유사한 형태의 봉두를 보머리에 조각하였다. 가구 형식은 뜬창방과 대공이 보상부에 맞닿아 종도리를 받치는 3량가이다. 천정은 연등천장이며 익루 내부의 연목은 둥글게 처리했으나 도리 밖으로는 네모나게 다듬어 부연처럼 만든 것이 특징이다.
[현황]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문화재단지 가장 안쪽의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각 안에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부사 박필문(朴弼文), 곡운 김수증(金壽增)이 쓴 편액과 창석 이준(李埈)의 중수기가 있다. 또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청풍한벽루(淸風寒碧樓)’라 명명한 현판이 걸려 있다. 제천 청풍 한벽루는 1971년 1월 8일 보물 제5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제천 청풍 한벽루는 충주댐 수몰 전에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로서, 본루에 익랑이 부설된 충청북도 지방에서 보기 드문 누정이다.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익랑이 딸려 있는 조선 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