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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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止男 |
영어음역 | Gim Jinam |
이칭/별칭 | 자정(子定),용계(龍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송헌(松軒) 김약시(金若時)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인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1593년(선조 26) 정자(正字)가 되었으며, 예조 좌랑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때에는 박응서(朴應犀)의 무고(誣告)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정호관(丁好寬)을 면박하였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 일당의 죄상을 폭로하였다.
승정원의 승지(承旨)를 거쳐 예조·병조·형조의 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행주 판관(幸州判官), 경기도·평안도·강원도 도사(都事)와 남양(南陽)·순천(順天)·상주(尙州)·청풍(淸風)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고, 1621년(광해군 13) 경상도 관찰사에 나아갔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 때 임명된 조신(朝臣)들이 외직(外職)에서 모두 파면되었으나 그만은 유임되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용계유고(龍溪遺稿)』가 있다. 김지남의 딸인 이침(李梣)의 처가 아들 이관하(李觀夏)에게 빈한한 친정 대신 아버지의 유고를 세상에 전할 것을 부탁하여, 외손 이관하가 유고를 수습하여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임하던 1654년(효종 5) 목판(木板)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초간본이 간행된 이후 1696년(숙종 22) 이관하의 아들이자 김지남의 외증손자인 이선부(李善溥)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초간본의 판본을 수정하고 행적(行迹)을 첨가하였고, 익산 군수(益山郡守)로 있던 선부의 중형(仲兄) 김선연(金善淵)이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서문과 정두경(鄭斗卿)[1597~1673]에게 받은 묘갈명의 판목(板木)을 보내와 1697년(숙종 23) 목판으로 문집을 추각(追刻)하였다.